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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영의 누추한 변절과 조지훈의 '지조론'

엄씨, 세뱃돈은 달아놔. 물론 받을 거란 기대는 하지 마시고...


한동안 정치판에 끼어들 것 같지 않아, 아 언론인 중에도 믿을 만한 사람이 또 한 사람 나오는가 보다 했다. 그러나 웬걸...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뒤늦게 뛰어들어 뭔가 다급한지 이리저리 벌이는 짓거리가 그야말로 가관이다. 누추하고 딱하다. 저런 사람이 저렇게까지 처신할 이유가 있을까, 새삼 의문이 들 정도다. 정치판이라는 게 그만큼 '노나는' 자리이고 '노른자위'이고 인간이 (특히 한국에서) 직장에서 은퇴한 뒤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직업 아닌 직업'이라는 뜻일까? 이민 오기 전까지 참 좋아했던 앵커맨, 뭔가 말이 되지 않는 사회의 부조리를 보도할 때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 코멘트를 달아서 잠시 유행어로 만들기도 했던 그 언론인이, 이렇게 전락해 간다. 아니 전락했다. 그에게 이 말을 다시 돌려주련다. 엄기영씨,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군요.' 


그리고 웬지는 모르겠으나 자꾸만 조지훈의 지조론이 떠올랐다. 제대로 읽어본 기억조차 없는데도 자꾸 떠올랐다. 아마 엄기영을 비롯한, 숱한 지식인, 특히 언론인들의 변절, 그 지조 없음이 걸려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지조 없는 세상에서 지조를 찾다니 제정신이냐고 반문할 이도 있겠지만... 하긴 이 지조론을 쓴 조지훈 씨 자신도 여러 차례의 변절로 구설수에 오른 장본인. 그래서 그의 지조론은 때로 잡을 수 없는 신기루, 끝내 이룰 수 없는 헛것의 바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러모로 씁쓸하다. 아래 지조론은 '좋은 글'이라는 사이트에서 복사해 왔다.

지조론 <조지훈>

지조(志操)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威儀)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기조의 강도(强度)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자는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명리(名利)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一朝)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지조있는 지도자를 존경하고 그 곤고(困苦)를 이해할 뿐 아니라 안심하고 그를 믿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생각하는 자이기 때문에 지도자, 배신하는 변절자들을 개탄하고 연민하며 그와 같은 변절의 위기 직전에 있는 인사들에게 경성(警醒)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정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식견(識見)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지사(志士)와 정치가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독립운동을 할 때의 혁명가와 정치인은 모두 다 지사였고 또 지사라야 했지만, 정당운동의 단계에 들어간 오늘의 정치가들에게 선비의 삼엄한 지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인 줄은 안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 정당운동을 통한 정치도 국리민복을 위한 정책을 통해서의 정상(政商)인 이상, 백성을 버리고 백성이 지지하는 공동전선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구복과 명리(名利)를 위한 부동(浮動)은 무지조로 규탄되어 마땅하다고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이 난국을 수습할 지도자의 자격으로 대망하는 정치가는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능한 직업정치인보다 지사적 품격의 정치지도자를 더 대망하는 것이 국민전체의 충정(衷情)인 것이 속일 수 없는 사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지사정치라야 국운이 회복된다 염결(廉潔)한 지사정치(志士政治)만이 이 국운을 만회할 수 있다고 믿는 이상, 모든 정치지도자에 대하여 지조의 깊이를 요청하고 변절의 악풍을 타매(唾罵,침을 뱉고 욕을 퍼부움)하는 것은 백성의 눈물겨운 호소이기도 하다. 

지조와 정조는 다같이 절개에 속한다. 지조는 정신적인 것이고, 정조는 육체적인 것이라고들 하지만, 알고보면 지조의 변절도 육체생활의 이욕(利慾)에 매수된 것이요, 정조의 부정도 정신의 쾌락에 대한 방종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정치인의 무절제를 정사꾼적인 이욕의 계교(計巧), 음부(淫婦)적 환락(歡樂)의 탐혹(耽惑)이 합쳐서 놀아난 것이라면 과연 극언이 될 것인가? 하기는 지조의 정조를 논한다는 것부터가 오늘에 와서 이미 시대착오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사람이 있는지 모른다. 하긴 그렇다. 왜 그러냐 하면, 지조와 정조를 지킨다는 것은 부자연한 일이요, 시세를 거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부와 홀아비가 개가(改嫁)하고 재취하는 것은 생리적으로나 가정생활로나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고, 또 막아서도 안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개가와 재취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승인하면서도 어떤 과부나 환부(鰥夫,홀아비)가 사랑하는 옛짝을 위하여, 또는 자녀를 위하여 개가나 속현(續絃,아내를 여읜뒤 아내를 다시 맞음)의 길을 버리고 일생을 마치는 그 절제에 대하여 찬탄하는 것을 또한 잊지 않는다. 

보통사람이 능히 어려운 일을 했대서만이 아니라, 자연으로서의 인간의 본능고(本能苦)를 이성과 의지로서 초극(超克)한 그 정신의 높이를 보기 때문이다. 정조의 고귀성이 여기에 있다. 지조도 마찬가지다. 자기의 사상과 신념과 양심과 주체는 진작에 집어던지고 시세에 따라 아무 권력에나 붙어서 구복의 걱정이나 덜고 명리의 세도에 차여하여 꺼떡거리는 것이 자연의 일이지, 못나게 쪼를 부린다고 굶주리고 얻어맞고 짓밟히는 것처럼 부자연한 일이 어디있겠느냐고 하면, 얼핏 들어 우선 말은 되는 것 같다. 여름에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하다가 가을 바람만 불면 단팥죽 장사로 간판을 남 먼저 바꾸는 것을 누가 욕하겠는가? 장사꾼, 기술자, 사무원의 생활방도는 이 길이 오히려 정도이기도 하다. 오늘의 변절자도 자기를 이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자처한다면 별 문제다. 그러나 더러운 변절의 정당화를 위한 엄청난 공언을 늘어 놓은 것이 분반한 일이다. 백성들이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먼 줄 알아서는 안된다. 백주대로에 돌아앉아 볼기짝을 까고 대변을 보는 격이라면 점잖치 못한 표현이라 할 것인가?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困辱)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정신의 자존자시(自尊自恃)을 위해서는 자학과도 같은 생활을 견디는 힘이 없이는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조의 매운 향기를 지닌 분들은 심한 고집과 기벽(奇癖)까지도 지녔던 것이다. 지조 매운 분은 기벽까지 있다 

신단재(申丹齊,신채호) 선생은 망명생활 중 추운 겨울에 세수를 하는데 꼿꼿이 서서 두손으로 물을 움켜다 얼굴을 씻기 때문에 찬 물이 모두 소매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한다. 어떤 제자가 그 까닭을 물으매, 내 동서남북 어느 곳에도 머리 숙일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무서운 지조를 지킨 분의 한 분인 한용운(韓龍雲) 선생도 지조 때문에 여러 기벽의 일화를 낳았다. 오늘 우리가 지도자와 정치인에게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신들 뒤에는 당신들을 주시하는 국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의 위의와 정치적 생명을 위하여 좀 더 어려운 것을 참고 견디라는 충고 정도다. 한때의 적막을 받을지언정 만고의 처량한 이름이 되지 말라는 채근담(採根譚)의 구절을 보내고 싶은 심정이란 것이다. 끝까지 참고 견딜 힘도 없으면서 뜻있는 야당의 투사를 가장함으로써 권력의 미끼를 기다리다가 후딱 넘어가는 교지(敎旨,간사한 재주와 지혜)를 버리라는 말이다. 욕인(辱人)으로 출세의 바탕을 삼고 항거로써 최대의 아첨을 일삼는 본색을 탄로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충언의 근원을 캐면 그 바닥에는 변절하지 말라, 지조의 힘을 기르란 뜻이 깃들어 있다. 변절이란 무엇인가? 절개를 바꾸는 것, 곧 자기의 심신으로 이미 신념하고 표방했던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철이 들어서 세워놓은 주체(主體)의 자세를 뒤집는 것은 모두 다 넓은 의미의 변절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욕하는 변절은 개과천선(改過遷善)의 변절이 아니고, 좋고 바른 데서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변절을 변절이라 한다. 일제 경찰에 관계하다 독립 운동으로 바꾼 이가 있거니와, 그런 분을 변절이라고 욕하진 않는다. 그러나 독립 운동을 하다가 친일파로 전향한 이는 변절자로 욕하였다. 권력에 붙어 벼슬하다가 야당이 된 이도 있다. 지조에 있어 완전히 깨끗하다고는 못하겠지만, 이들에게도 변절자의 비난은 돌아가지 않는다. 비난, 불신의 대상이 되는 변절자는 야당 전선에서 이탈하여 권력에 몸을 파는 변절자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이름을 역력히 기억할 수 있다. 

신념으로 일관하면 변절자가 아니다 자기 신념으로 일관한 사람은 변절자가 아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남한산성의 치욕에 김상헌(金尙憲)이 찢은 항서(降書)를 도로 주워 모은 주화파(主和派) 최명길(崔鳴吉)은 당시 민족 정기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지만 심양(瀋陽)의 감옥에 김상헌과 같이 갇혀 오해를 풀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얘기다. 

변절자에게도 양심은 있다. 야당에서 권력에로 팔린 뒤 거드럭거리다 이내 실세(失勢)한 사람도 있고 지금 요추(要樞)에 앉은 사람도 있으며, 갓 들어가서 애교를 떠는 축도 있다. 그들은 대개 성명서를 낸 바 있다. 표면으로 성명은 버젓하나 뜻있는 사람을 대하는 얼굴에는 수치의 감정이 역연하다. 그것이 바로 양심이란 것이다. 구복과 명리를 위한 변절은 말없이 사라지는 것이 좋다. 자기 변명은 도리어 자기를 깎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핑계는 있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왜 아기를 배게됐느냐 하는 그 이야기 자체가 창피하지 않은가. 

양가(良家)의 부녀가 놀아나고, 학자, 문인까지 지조를 헌신짝같이 아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으니 변절하는 정치가들도 우리쯤이야 괜찮다고 자위할지 모른다. 그러나 역시 지조는 어느 때나 선비의, 교양인의, 지도자의 생명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지조를 잃고 변절한다는 것은 스스로 그 자임하는 바를 포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