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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지진

금요일, 밴쿠버에 잠시 다녀왔다. TV는 일본 지진 이야기로 가득차 있었다 (보스턴닷컴의 '빅 픽처' 이미지들). 아비규환이 거기 있었다. 지옥이 거기 있었다. 인간의 삶, 인간이 세운 것, 모든 인공의 것들이 파도에 휩쓸리고, 땅속으로 꺼지고 있었다. 대개는 섬광처럼 짧고 부박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아 저 불쌍한 사람들...저들은 얼마나 무섭고 참담하고 괴로울까! 내가 저기에 있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인간의 탐욕스럽고 지나친 간섭이 심각한 기후 변화를 낳았다더니, 이게 그 한 증거인가? 밴쿠버 지역도 지진대인데 괜찮을까? 쓰나미 경보가 내렸던데, 여기에도 그 여파가 미칠까? ...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특히 대외적으로), 도무지 명료한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그저 멍했다. 트위터를 죽 따라가다 보니, 이런 트윗이 눈에 띄었다.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의 참상 이미지중 하나. http://www.boston.com/bigpicture/2011/03/massive_earthquake_hits_japan.html



"patriamea 도종환 시인의 <지진> 전문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http://j.mp/gOG0NT @reformedscholar 분이 사이트를 찾아주셨습니다."

도종환 씨가 이런 시를 다 쓴 줄은 미처 몰랐다. 하기사 그에 대해 내가 뭘 아는가. '접시꽃 당신'과, 전교조 정도밖에. 아무튼 다음은 그의 시 전문. 당시 한국에도 작으나마 지진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의 지진 사태를 본 감상인지는 모르겠다. 공감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우리가 세운 세상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 몰랐다
찬장의 그릇들이 이리저리 쏠리며 비명을 지르고
전등이 불빛과 함께 휘청거릴 때도
이렇게 순식간에 지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줄 몰랐다
우리가 지은 집 우리가 세운 마을도 
유리잔처럼 산산조각 났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고 폐허만이 곁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황망함 속에서 아직 우리 몇은 살아남았다
여진이 몇 차례 더 계곡과 강물을 흔들고 갔지만
먼지를 털고 일어서야 한다
사랑하는 이의 무덤에 새 풀이 돋기 전에
벽돌을 찍고 사원을 세우고 아이들을 씻겨야 한다
종을 울려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숲과 새와 짐승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좀 더 높은 언덕에 올라 폐허를 차분히 살피고
우리의 손으로 도시를 다시 세워야 한다
노천 물이 끓으며 보내던 경고의 소리
아래로부터 옛 성곽을 기울게 하던 미세한 진동
과거에서 배울 수 있는 건 모두 배워야 한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단 말은 그만 하기로 하자
충격과 지진은 언제든 다시 밀려올 수 있고
우리도 전능한 인간은 아니지만
더 튼튼한 뼈대를 세워야 한다
남아 있는 폐허의 가장자리에 삽질을 해야 한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가치로 등을 밝히고
떨리는 손을 모두어 힘차게 못질을 해야 한다
세상은 지진으로 영원히 멈추지 않으므로

정말 '뱀다리': 이 시의 구절중 '벽돌을 찍고 사원을 세우고' 대목에서, '왜 교회가 아니고 사원이냐고 핏대를 올릴 환자들도 꽤 있겠다'라는 생각이 퍼뜩... >.<

시 하나 추가. 페이스북에서 본 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 
 
어떤 사람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다
만일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나가면,
유럽은 그만큼 줄어든다.
한 곶이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고,
그대의 친구나 그대의 영토가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줄어들게 한다.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 존 던(John Don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