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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3부작 - 흥미진진, 구멍 숭숭

The hunger games (1부);
Catching fire (2부);
Mocking Jay (3부).

지은이: 수전 콜린스 (Suzanne Collins)
형식: 아마존 킨들 버전.
출판사: 스콜라스틱 프레스 (Scholastic Press).


헝거 게임스 3부작을 며칠 전에 끝마쳤다. 한국말로 바꾸면 '허기 전쟁'쯤 될텐데, 묘하게도 어감이 원작과 비슷하다. 

세계가 13개의 구역과, 그를 통치 - 라기보다는 압제 - 하는 구역 (페이넘, Panem)으로 분할된 미래의 어느 시대, 지배 구역은 첨단 기술과 무기로 유토피아적 사회를 구현하고 있지만 나머지 13개 구역 - 이중 제 13구역은 페이넘에 반란을 꾀했다가 멸절된 것으로 나온다 - 은 페이넘의 지배 계급들에 온갖 자원과 식량을 공급하는 임무를 맡은 노예적, 식민지적 사회이다. 페이넘은 이들이 과거처럼 반란을 꾀하지 못하게 하는 한 방편으로 해마다 각 지역에서 십대 남녀 2명씩을 무작위로 뽑아 수도인 페이넘에서 헝거 게임을 벌이게 한다. 생존자가 마지막 한 명으로 줄어들 때까지, 24명은 페이넘이 설정해 놓은 경기장 안에서 죽고 죽이는 생존 경쟁, 혹은 살인 게임을 벌일 수밖에 없다. 그 경기장의 환경은 온갖 예기치 않은 장애물과 함정과 위험물로 가득차 있고, 경기 참가자들은 끝없는 허기에 시달리며 마지막 생존자가 되기 위해 분투한다. 그래서 '허기' 전쟁이다.

1권은 주인공인 캐트니스 에버딘 (Katnis Everdeen)이 허기 전쟁에 참가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무엇보다 소재의 참신성과, 독립심과 의지력 강한 여주인공 캐트니스의 매력, 허기 전쟁에 참가한 다른 경쟁자들과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혈투와 합종연횡, 막바지의 극적 반전 등으로 가장 높은 가독성을 자랑한다. 더욱이 경기장의 갇힌 공간 안에서, 제한된 숫자의 등장 인물들이 다양한 형식과 양상으로 격돌하는 가운데 하나둘 줄어드는 설정 자체가 소설의 재미를 보장한다. 

2권은 캐트니스가 - 달리 누구겠는가? - 허기 전쟁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았으나 페이넘의 통치자에게 불순 분자로 '찍혀' 또다시 허기 전쟁에 나서는 이야기. 이번 참가자들은 1권과 달리 과거 허기 전쟁에서 살아남은 우승자들이어서 캐트니스의 생존 확률은 훨씬 더 낮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곧 페이넘 통치자인 스노우의 의도이기도 하다. 그런 한편 압제에 시달려 온 열두 구역중 몇 곳이 페이넘에 반란을 꾀하면서 허기 전쟁은 위기감을 더해 간다.

3권은 캐트니스가 반란군을 규합하는 상징적 인물, '모킹 제이' (Mocking Jay)가 되어 페이넘의 압제에 대항해 싸우는 이야기. 하지만 반란군의 수장이 페이넘에 대항하는 방식에 여러 윤리적 의문이 제기되면서, 캐트니스는 점점 더 누가 진정한 적이고 우군인지 혼란에 빠진다. 게다가 허기 전쟁에 함께 참여했던 피타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사냥을 다니며 사랑을 싹틔웠던 게일 사이에서 어느 쪽도 선뜻 택하지 못한 채 감질나는 사랑의 삼각 관계를 이어가면서 재미를 배가한다. 

줄거리는 대충 이 정도.

책은 재미 있었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7부작으로 완결되면서 생긴 청소년 독서계의 빈 공간을 가장 표나게 채운 책 다웠다. 물론 그 인기 면에서는 한참 못 미쳤지만, 허기 전쟁 3부작은 그 나름의 열혈 독자층을 형성하면서 가뜩이나 독서 인구가 줄어 허기에 시달리는 출판계에 만만찮은 양식을 대주었다. 책 제목을 고려하면 다소 역설적인 상황.  

그러나 허기 전쟁 3부작은, 특히 내게는, 여러 모로 아쉬움을 남겼다. 무엇보다 세 권의 완성도가 고르지 못했다. 1권이 단연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했지만, 2권, 3권으로 넘어가면서 점점 소설적 완성도에서 아쉬움을 더해갔다. 수전 콜린스의 재능이 가장 빛난 대목은 1권과 2권 중반까지, 그러니까 제한된 등장 인물들이 나와 서로 지지고 볶는 과정, 서로 싸우고 화해하고, 손잡고, 배반하고, 하는 개별 인간들의 드라마를 묘사하는 부분이었다. 앞 두 권에서 캐트니스와 피타를 비롯한 주연급 조연이나 주요 조연들의 성격과 특징은 생생했고, 그래서 그들이 엮어가는 드라마에도 힘과 감동이 있었다. 

2권 후반, 3권에 가서는 그 힘과 감동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사건의 규모가 커지고, 한두 구역도 아니고 13개 구역과 페이넘이 내전에 휩싸이는 지경에 이르자 소설은 어떻게 그 내용을 그럴듯하게 묘사하고 적절하게 오무려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양상이었다. 개연성은 떨어지고, 등장인물의 성격은 일관성을 잃어버렸다. 말하자면 캔버스는 10배쯤 커졌는데, 그곳을 촘촘히 채울 수 있는 붓과 물감과 소재가 부족한 형국이랄까? 

그리고 2권 중반 이후와 3권에 와서, 너무 많이 죽는다. 아니 너무 많이 '죽인다.' 누가? 수전 콜린스가. 별로 죽일 필요가 없는데도 죽이고, 앞에서 A가 죽으면 그의 연인인 B는 도저히 혼자 살아남을 수 없을 것처럼 설정해 'A가 죽으면 안되는데...'라고 독자가 속으로 빌게 해놓고는 허무 시리즈의 한 장면처럼 A를 죽여 버린다. 아, 그러면 B는 도대체 어떻게 될까? B? No problem... (그간의 내용으로 보면 B는 최소한 서너 번은 혼절을 하거나, 좀더 현실적이게는 자살을 택해야 마땅할 것 같은데...)

3권 마지막 장의 시, 혹은 노래는 참 아름다웠고, 그래서 결말도 아름답게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거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피를 쏟았다. 그럴 필요나 개연성이 없었는데도 그랬다는 점이 문제고, 무엇보다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스케일로 줄거리를 벌렸다가 제대로 오무리지 못해 1, 2권까지 잘 쌓아 온 이야기를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이야기를 더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아 봤자, 스포일러 노릇만 하게 될 것 같아서 이만...

결론. 소설은 재미 있었다. 하지만 '옥의 티'가 너무 많았다. 거의 책 전체의 완성도를 한 단계 떨어뜨릴 뻔했을 정도로...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유혈낭자한 소설 - 꼭 장면만이 아니라 소설이 드러내는 지극한 정치적 반전 - 이 어떻게 청소년용 ('YA') 소설로 분류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출판사가 학구스러운 스꼴라스띡이라서? 

내맘대로 별점 - 1권 별 다섯에 다섯. 2권 별 세개 반, 3권 별 3개...나 두개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