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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재즈' 가수 마이클 프랭크스와 빗속의 호랑이

사라질 음반들. 참 오래도 따라왔다.


들어가는 잡소리

지난 며칠간 음반을 정리하고 있다. 새 집으로 이사 온 지 2년이 다 돼가도록, 이삿짐을 풀면서 되나가나 꽂아둔 음반을 정리하지 않고 - 못하고? - 있었다. 이사를 워낙 자주 다닌 탓에 책 정리, CD 정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현저히 식은 데다, 특히 CD의 경우 온라인으로 음악을 듣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져서 특별히 CD로 눈을 돌려야 할 일이 별로 없었던 탓도 있었다. 그러다 올리브 뮤직 서버 (Olive Music Server 03HD 리뷰도 썼다)를 사면서, '정말 안듣는, 안들을 것 같은 CD는 이참에 솎아내야겠다'라고 결심했다. 

솎아내면서, 앗 이런 음반이 다 있었구나, 라기보다는 앗 이런 허접 음반이 여기까지 살아서 따라왔구나, 하고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개는 짜깁기 편집 음반. 'Best classical music...ever!'류. 여기에서 'classical music' 대목만 오페라나 조용한 음악, 러브송, 로맨틱한 음악 따위로 바꾸면 그런 류의 허접 시리즈가 대여섯 개로 늘어나는 건 금방이다. 그런데 이런 허접 패밀리가 여기까지 죽지도 않고 살아 왔다! 이런 음반은 옛날 음악 담당 기자를 할 적에 음반사에서 소개해 달라고 준 것인데, 뮤직 서버에 걸어보면 인터넷으로 음악 DB를 검색한 뒤 '그런 정보 없거든?' (No information available)으로 나오기 일쑤다. 그런 경우 지털 화일로 리핑(ripping)해도 나중에 찾아볼 수가 없으니 무용지물이다. 디지털 쓰레기로 전락하는 셈. 일삼아 내가 정보를 넣을 수도 있지만, 이런 짜깁기 음반이 대체로 모짜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 2악장, 파가니니의 바이올린협주곡 1악장, 하는 식으로 다른 음악의 팔 하나, 다리 하나, 혹은 머리 하나만 떼어놓아 붙여놓은 꼴이니 그만한 공력을 들일 만한 가치도 없어 보인다. 

1989년 동인천에서, 아직 '군바리'였던 시절에 산 음반.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추억은 힘이 세다

가끔은 추억의 힘에 밀려, 그래 자연사할 때까지 갖고 있자, 라고, 리핑도 하고, 음반도 다시 꽂아두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중 하나가 이 제목으로 나온 마이클 프랭크스 (Michael Franks)다. 그의 음반을 처음 만난 건 '1989년 10월 동인천'이다 (그렇게 음반 재킷 뒷면에 씌어 있다). 내가 군 생활 하던 시절이다. 그 해 3월에 임관해 인천 서해안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런데 어떻게 이 음반을 사게 됐을까? 내가 그를 알아서? 물론 아니다. 표지와 제목 때문이었다. 초록색 바탕 위에 앙리 루소 (Henri Rousseau)의 '폭풍 속의 호랑이' (Tropical Storm with a Tiger) 그림이 액자처럼 놓여 있고, 그 위에는 그저 단순한 제목, 마이클 프랭크스, 빗속의 호랑이. 당시엔 그 그림이 루소 것인지도 몰랐다. 웬지 그림이 좋았고, 음반의 분위기가 좋았다. 그래서 샀다. 

안타깝게도, 음악 자체로부터 받은 인상은 그 표지로부터 받은 인상만큼 강렬하지 못했던 것 같다. 거의 '매가리없다'라고 할 만큼 조용조용, 읊조리듯 내놓는 가수의 목소리가 참 부드러우면서도 웬지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한두 걸음 뒤로 빠진 듯한 느낌을 줬다는 것. 하긴 그 뒤에 라디오에서 그의 노래 Antonio's Song이 자주 흘러나오는 것을 듣기는 했다. 그의 목소리를 통해 들리는 세상은 참 나직나직, 느릿느릿, 평화로웠다. 

오늘 위키피디아에 찾아보니 첫 머리에 이렇게 적혀 있다. 

Michael Franks (born 18 September 1944 in La Jolla, California) is a smooth jazz singer and songwriter from the United States. He has recorded with a variety of well-known artists, such as Patti Austin, Brenda Russell, Art Garfunkel, and David Sanborn. His songs have been recorded by The Manhattan Transfer, Patti Labelle, Carmen McRae, Diana Krall, Shirley Bassey and The Carpenters. 1944년 미국 캘리포니아 라호야 태생의 '스무드 재즈 가수' ('smooth jazz'라는 별도의 하위 장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겸 작곡가. 패티 오스틴, 브렌다 러셀, 아트 가펑클 (오잉~!?), 데이비드 샌본 같은 유명 가수들의 음반 제작에 참여했다. 맨해튼 트랜스퍼, 패티 러벨, 카멘 매크레이, 다이애나 크롤 (다시 오잉~!?), 셜리 배시, 카펜터즈 (세번 째 오잉~!?) 등이 그의 노래를 취입하기도 했다. 대단한 실력파 뮤지션이로세...@@

정말 정말 오랜만에, 아마도 몇년 만에, 다시 이 친구의 음반을 들어본다. 타아이거 인 더 뤠인...타아이거 인 더 뤠인... 참 한갓지다. 비 맞는 타이거 본인은 이 놈의 비는 언제나 그치려나...아직 아침도 못 먹었는데...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원망할지도 모를텐데...ㅎㅎ 

그 음반의 속내. 음반에 비친 손가락은 물론 자신 찍은 작자의 것. 음반의 본래 디자인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