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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 (Inivisible) - 보이지 않는 사랑, 혹은 진실에 대한 소설

제목: 보이지 않는 (Invisible)
지은이: 폴 오스터 (Paul Auster)
형식: 아마존 킨들 에디션
화일 크기: 362 KB
종이책 분량: 320쪽
출판사: 헨리 홀트 앤 컴퍼니 (Henry Holt and Co.) 초판
출간일: 2010년 4월27일
판매사: 맥밀란 (Macmillan)
언어: 영어

'I shook his hand for the first time in the spring of 1967.' (1967년 봄에 나는 처음으로 그와 악수를 했다.) 

오스터의 열 다섯 번째 소설 '보이지 않는'은 이렇게 시작한다. 애덤 워커 (Adam Walker)라는, 참 미국적이고 개성없고, 사실 문학성과는 별로 가까울 것 같지 않은 이름의 주인공이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펼쳐간다. 2부에서는 그것이 2인칭으로 바뀌고, 3부에서는 3인칭 시점이 된다. 4부는 애덤을 사랑한 여자 세실의 일기다. 그렇게 시점을 바꿔가는 가운데, 애덤의 청춘기를 다양한 각도와 멀거나 가까운 시점에서 보여준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1967년 한 해의 인상깊고 충격적인 사건이 소설의 기반을 이루고, 그 사건에 얽혔던 인물들의 후일담이 소설에 맛을 입히는 일종의 고명이다.

애덤이 그 해에 만난 루돌프 본과 그의 애인 마고는 그의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지렛대이다. 그가 본을 만나는 장면부터가 웬지 으스스하다. '나는 당시 콜럼비아대 2학년생이었고, 책에 대한 욕구와 언젠가 스스로도 괜찮다고 여길 만한 시인이 될 것이라는 믿음 (혹은 망상)밖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였는데, 시를 많이 읽었으므로, 그의 이름은 단테의 지옥에서 이미 만난 적이 있었다. 그의 신곡중 지옥편(Inferno)의 28편 마지막 연을 더듬거리며 지나갔던 망자 말이다. ...'

애덤은 또 마고를 통해 성에 눈뜨고, 그 해 여름에는 그의 누이인 그윈과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으며, 파리로 가서는 본, 마고와 운명의 재회를 하는 한편, 세실이라는 또 한 명의 중요한 여성을 알게 되지만 본을 징치하겠다는 과욕의 역풍을 맞아 파리로부터 추방당한다. 

'보이지 않는'는 실로 오스터다운 소설이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에피소드들로 독자들에게 마치 범죄소설을 읽는 듯한 긴장감과 '그래서? 그래서?' 하는 조바심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소설을 규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우연', 혹은 '우연성'이 이 소설에서도 어김없이 중요한 장치로 작용하며, 결말에 이르러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독자의 혼을 빼놓는 재주도 여전하다. 소재로만도 '보이지 않는'은 이미 소설적 재미의 필수적 재료를 다 갖췄다. 인간의 악마성, 섹스, 살인, 근친상간, 미스테리, 인간의 눈먼 탐욕과 우매함 등등.

오스터는 '보이지 않는'에서 다양한 시점을 택해, 같은 사물이나 사건, 인간 관계를 더없이 입체적으로 그려 보인다. 그래서 애덤의 폭풍 같은 청춘 시절은 더욱 생생하고 극적이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도 그만큼 더 강력하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해서는 끝내 문을 열어 보이지 않는다. 그게 오스터의 특징이고, 힘이고, 매력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이라는 제목도 더욱 긴 여운을 남긴다. 

애덤의 믿기 어려운 인생 행로, 1967년의 그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어디에서 얼마까지가 진실인지, 폴 오스터는 시원하게 풀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이게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헷갈린다. 특히 1967년 여름 한철에 벌어진 애덤과 그윈의 근친상간이 정말인지 아닌지 독자는 끝내 알지 못한다. 특히 그윈이 그 사실을 전면 부인하면서, 독자는 더욱 미궁에 빠진다. 본과 마고, 세실에 얽힌 사연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 소설의 '보이지 않는'은 '진실'을 지칭하는 것처럼 읽힌다. 

한편 '보이지 않는'은 사랑을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다. 애덤과 마고, 애덤과 그윈, 애덤과 세실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욕정, 우정, 사랑,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 관계의 진실은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다. 그 사실을 오스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갖 다양하고 효과적인 소설적 장치를 통해 독자에게 들려준다. 

오스터의 소설을 제법 읽은 편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것도 읽었고, 캐나다로 이민 와서는 원서로도 몇 권 읽었다. Brooklyn follies, New York 3부작, Book of illusion...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Book of illusion. 읽고 난 여운이 참 오래 간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 '보이지 않는'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소설적 재미를 느끼게 할 만한 모든 장치와 재료가 잘 갖춰졌고, 그들의 배치 또한 나무랄 데 없이 잘 이뤄졌는데도, 어쩐지 그 소설의 파장은 그 전에 본 몇몇 책들에 견주어 좀 약하다. 오스터의 스타일에 너무 익숙한 탓...이라고 하기엔 좀 자신이 없지만, 어쨌든 처음 걸었던 큰 기대에 비해서는 좀 약하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뉴욕타임스의 이 극찬 'Love crimes'를 보고는 더욱 큰 기대를 걸었었다). 

오스터의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대목은 작가의 시점에 대한 글 (캡처한 그림 참조). 특히 회고록이나 자서전처럼 자기 얘기를 쓸 때 1인칭으로 쓰게 되면 도리어 자신을 지워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 글 쓰는 나와, 그 글로 표현하는 나를 분리할 필요가 있고, 그러기에는 1인칭보다 3인칭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강력하다는 것...(그런 친구의 조언에 따라 애덤은 2부에서는 자신을 2인칭으로, 3부에서는 3인칭으로 묘사한다).

킨들의 그 대목을 캡처한 것. 나 말고도 7명이 더 이 대목을 인상적이라며 밑줄을 그었단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e북 읽기의 한 사회적 특성.



사족: 글이 참 안써질 때가 있다. 오늘이 그렇다. 뻑뻑하고, 단어가 머리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이것도 월요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