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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최고의 헤드폰 야마하 RH10MS

헤드폰, 혹은 이어폰을 하나 이상 갖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요즘처럼 누구나 예외없이 아이폰, 아이팟, 갤럭시 등 손안에 쏙들어가는 스마트폰이나 MP3 플레이어를 가진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새로운 디지털 기기 (gadget)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이 많은 편이라 - 기자 때려친 지가 10년이 넘었는데도 그 병통은 유구하다 - 이어폰과 헤드폰도 보통 사람들보다 많은 편이다. 

아이팟용 흰색 이어폰이 하나 있고, 아이가 주변 소음을 싫어해 그 소리를 없애준다는 소니의 싸구려 - 따라서 엉터리 -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귀 위에 올리는, 이른바 'on-ear' 헤드폰이다)이 하나, 센하이저의 on-ear 헤드폰이 또 하나, 그리고 말랑말랑한 고무로 마무리한 이어폰 (영어론 귀 '안'에 넣는다고 해서 'in-ear' 헤드폰이다)이 또 하나. 그리고 아마도 15년쯤 전에 아내가 장만한, 그래서 군데군데 껍데기가 벗겨지긴 했지만 소리 듣는 데는 큰 문제가 없는 옛날 소니 헤드폰 (이건 귀를 완전히 덮는다고 해서 'around-ear' 헤드폰이다). 다시 그리고 무선 기능을 갖춘...브랜드가 어디였더라?...헤드폰 또 하나...기타 등등. 

그런데 이들중 어느 하나도 마음에 쏙 드는 게 없었다. 귀 안에 밀어넣는 이어폰은 음질도 음질이려니와 오래 들으면 청력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 - 설령 볼륨을 적당히 조절해도 - 느낌을 늘 줬다. 소리가 야박하고 날카롭고 건조하게 들린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두어달 전, 퓨쳐샵(Futureshop)이라는 캐나다산 전자제품 매장에서 보스 (Bose)의 '주변 소음 소거' (noise canceling) 헤드폰을 만났다 (QuietComfort 15 Acoustic Noise Cancelling headphones). 직접 써보라고 진열해놨는데 귀 전체를 마치 겨울철의 귀마개처럼 넉넉하게 감싸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그러면서도 덩치가 크지 않아 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진짜백이 놀라움은 그걸 써보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듣기 좋은 실내악이 조용히 흘러나오는데, 돌연 "지금 잠깐 헤드폰을 벗어 보세요"라는 부드러운 저음의 아나운서 말이 들리는 것이다. 헤드폰을 벗는 순간 무지막지한 소음 - 바로 여객기를 타고 날 때 들리는 그 먹먹한 소리가 내 귀를 뒤흔들었다. 

다시 썼다. 마치 안락한 카페에 앉은 듯한 분위기로 돌변하면서 방금까지 듣던 실내악이 계속,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와 이건 정말 대단하구나. 이건 진짜 '노이즈 캔슬링'이야! 그런데 얼마? 단돈 350달러. 허걱! Never mind...

하지만 보스 헤드폰으로부터 받은 강한 인상은 그 뒤에도 여전했다. 한두 번 더 일삼아 들러서 들어봤을 정도니까... 그렇다면 여기에 버금가면서 값은 100달러대인 헤드폰이 어디 없을까? 위 제목으로 나온 야마하의 헤드폰은 그 결과로 찾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도리어 보스보다 더 나은 - 물론 나만의 생각이지만 - 제품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에 들어가기 직전에 코스코를 통해 온라인으로 샀다. 마침 이어폰까지 끼워 세일중이었다 (Yamaha Studio Monitor and Inner-ear Headphone Bundle).

장점
- 소리. 음질. 지금까지 들어본 헤드폰중 단연 압권이다. 내가 듣는 음반이나 mp3 음악의 '원음'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거기에 가장 근접한, 과장하지도 왜곡하지도 않은 소리를 들려준다. ...라는 느낌을 준다. 방송국에서 흔히 말하는 '모니터용 헤드폰'으로 제격일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아마존닷컴에 이런 칭찬 리뷰가 나와 있다 (Pro Studio and Live Engineer found the best headphones in existence!). 나도 클래식음악을 이것저것 골라 들어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헤드폰중에는 일부러 베이스음만 강조해 들려주는 제품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정신나간 일이라고 보지만, 가끔 도로에서 만나는, 이 세상이 온통 제 소윤줄 알고 베이스음 강화된 자동차의 볼륨을 최고로 키워 움프!움프!움프! 하는 싸가지 없는 운전자들을 떠올리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하지만 더욱 우려스런 상황은 그처럼 '큰' 소리를 선호하는 요즘 세대의 취향을 따른답시고, 일껏 연주곡을 녹음한 다음에 엔지니어들이 특정 대역의 소리들을 다시 증폭시켜 음반으로 내거나 mp3 파일로 올리는 범죄적 행태다 (The Loudness Wars: Why Music Sounds Worse).

나는 왜곡하거나 과장하지 않은 소리, 원음에 가능한 한 가장 충실한 소리가 좋다. 그래서 KBS 제1FM의 'FM 실황음악회'에 정기 출연하던 시절에도, 그 스튜디오에 놓인, 별로 비싸보이지 않는 모니터용 스피커가 정말 갖고 싶었었다 (브랜드가 탄노이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특히 소리 길이 잘들어서 (aging) 어떤 음악이든 기막히게 소화했다). 

- 귀에 무리가 없다. 아니 상대적으로 적다고 해두자, 특히 귓속에 밀어넣는 이어폰과 견주어서. 이어폰으로 들으면 오디오의 볼륨을 7이나 8 수준으로만 높여도 너무 시끄럽고 귀가 아파서 그 아래로 낮춰야 한다. 하지만 귀 전체를 덮는 야마하 헤드폰은 볼륨을 최대치인 10까지 높여도 그런 느낌이 없다. 귓속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느낌이 아니라, 귀 주위로, 따라서 내 주변으로 음이 고르게 퍼져 감싸는 듯한 느낌을 준다. 

- 겨울에 쓰기 좋다. 왜? 귀를 폭 덮어주니까. 설령 음악을 안듣더라도 그냥 쓰고 다니면 겨울철 귀마개 대용이 된다. 실제로 서울 가서 방한용 귀마개로 잘 써먹었다. 폼은 안났겠지만...^^

2010년 12월7일, 한국으로 가는 대한항공 기내에서 찍은 사진.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없어도 귀 전체를 감싸면서 그에 준하는 기능을 해줬다.



단점
:
- 너무 크고 휴대하기 불편하다. 본래부터 예상했던 대목이지만 역시 들고 다니기가 불편했다. 특히 이어폰과 견주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크기에 비해서는 별로 무겁지 않은 편이지만 그래도 크다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 폼이 안난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한테는 별로 인기가 없을 것 같다. 거리를 활보하는, 예외없이 패션모델 같은 머리 모양에 '명품' 복장을 갖추고 다니는 이들이, 이 멋대가리 없는 헤드폰을 머리에 얹고 다닐까? 혹시 현빈이나 그에 준하는 스타가 이 헤드폰을 끼고 다니는 장면이 인기 드라마에 나온다면 또 모르지... 하지만 캐나다에선 괜찮다. 내가 전봇대로 이를 쑤시든, 야마하 헤드폰을 방한용 귀마개 대용으로 머리에 얹고 다니든, 그게 자기들한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 한, 'don't care'니까.

-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 아니다. 이걸 단점이라고 해야 할지 잘 판단이 안선다. 야마하도 처음부터 그런 기능을 넣지 않은 거니까... 하지만 귀 전체를 덮는 방식이다 보니 어느 정도는 외부의 소음을 차단해주는 효과가 있다. 스스로 파장을 만들어 일삼아 외부 소음을 소거하는 보스와는 그 성격부터가 다르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배터리를 넣을 필요가 없으니 어쩌면 그게 장점일 수도 있을까?

- 여름엔 쥐약일 것 같다. 겨울엔 귀마개 대용의 장점이 있다지만 여름엔? 이열치열? 아서라 말아라. 여름에는 쓰고 다니기 어려울 것 같다. 특히 열대야까지 덩달아 기승을 부리는 한국에서라면... 

뭐 이 정도... 사실 개인적으로는 위 단점도 단점으로 보지 않는다. 다 그럴 줄 알고, 음질 좋은 헤드폰 갖자고 산 거니까... 그런 면에서는 '완전 만족'이다. 요즘의 한국 유행어를 흉내낸다면 '헤드폰계의 음질 종결자'라고 할 수 있겠다. 별 다섯에 여섯...아니 다섯 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