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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 달


회고록 <세상 최강 사서> (The World’s Strongest Librarian)의 지은이인 조쉬 해나가니는 자신의 꿈 중 하나가 매일 밤 아들에게 로알 달 (Roald Dahl, 1916-1990)의 책을 읽어주는 일이라고 자신의 블로그에 썼다. 해나가니와 그의 회고록은 내가 국내 번역 출간을 권한 인연으로 그 내용을 남들보다 비교적 잘 아는 편이다.


그런 그의 글을 보고, 또 블로그 곳곳에서 로알 달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대체 그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저럴까, 하는 호기심을 가졌다. 내게는 책보다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더 익숙했다. <제임스와 거대 복숭아> (James and the Giant Peach), <찰리와 초콜렛 공장>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마틸다> (Matilda), <환상적인 폭스 씨> (Fantastic Mr Fox) 등이 그런 경우. <초콜렛 공장>은 윌리 웡카 역을 맡은 조니 뎁과 찰리를 연기한 프레디 하이모어의 빼어난 퍼포먼스가 팀 버튼의 환상적인 세팅과 잘 어우러진 명작이었고, <거대 복숭아>와 <폭스 씨>는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사랑스러운 애니메이션으로 강한 인상과 감동을 남긴 수작들이었다. 상대적으로 좀 오래된 영화 <마틸다>는 <34번가의 기적>으로도 유명한 깜찍한 아역 배우 마라 윌슨 때문에 가외로 더 인기를 끈 가작이다. 그러고 보니 달은 영화 복도 꽤 많은 편이다.


비록 직접 읽은 책은 없었지만 해나가니의 ‘로망’을 듣고, 나도 언젠가 성준이에게 그의 동화들을 읽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막연히 동경해 왔다.


처음에는 <제임스와 거대 복숭아> 애니메이션을 흥미진진하게 보고 나서, 책에 도전했다. 작년 초로 기억한다. 하지만 2, 30 페이지쯤 읽다가 포기했다. 성준이가 아직은 글보다 그림에 더 눈길을 줬는데, <거대 복숭아>에는 그런 그림이 턱없이 부족했다.


며칠전, 성준이에게 “이젠 베이비들이 읽는 그림책만 보지 말고, 로알 달의 책을 한 번 보면 어떻겠니?”라고 떠보았다. 의외로 순순히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폭스 씨>를 골라 왔다. 2년 전에 지레 구입한 15권짜리 로알 달 전집의 작품들 중에서는 비교적 얇았고, 일단 제목부터 흥미를 끌 만했다.


하루에 두세 장씩 읽었다. 그런데 성준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즐거워했다. 폭스 씨와 그의 이웃, 친구들, 그리고 악당 농부 삼인방 보기스, 번스, 빈이 벌이는 폭스 체포 작전에 마치 자기 일처럼 귀를 쫑긋 세우며 관심을 보였다. 폭스 가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나 내 옆에 붙어서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책을 읽자마자, 아니 채 다 끝내기도 전에, 조지 클루니와 메릴 스트립이 폭스 씨 부부의 목소리를 연기한 <환상적인 폭스 씨> 애니메이션을 넷플릭스에서 시청했다. 원작의 내용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배경과 상황을 더했고, 특히 결말 부분도 극적인 위기 상황을 몇 개 더해서, 거의 스릴러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했다. 영화의 구도, 색감, 캐릭터들의 표정과 대사, 움직임 등이 영화의 제목마따나 ‘환상적인’ 수준이었다. 아내도 감탄하며 보다가, “이거 웨스 앤더슨 같네, 감독이 누구야?”라고 물었다. 확인해 보니 아니나다를까, 웨스 앤더슨이었다. <문라이즈 킹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등을 통해 이미 홀딱 반한 그 웨스 앤더슨이, 그 전에 이처럼 사랑스러운 애니메이션도 만들었구나!


<폭스 씨>의 대성공에 힘입어, 요즘은 <찰리와 굉장한 유리 엘리베이터>를 읽는 중이다. <초콜렛 공장>의 후속편이다. 찰리가 윌리 웡카의 후계자로 결정된 직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데 속도 조절과 타이밍 잡기에 실패해 너무 멀리 올라와 버리고, 거기에서 미국의 우주인들에 의해 화성인으로 오인 받는가 하면, 무시무시한 달걀 외계인 - 버미셔스 크니드 - 들에게 쫓긴다. 절반쯤 읽었는데 달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엽기발랄한 캐릭터들과 대사가 꽤나 재미지다.


요즘의 잠자리 독서는 더 이상 내가 성준이게 무엇을 읽어주는 수준이 아니라, 실은 나도 처음으로 읽으면서 배우고 즐기는, ‘더불어 독서’ 의 수준이다. 그래서 속으로는, 성준이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든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렇게 함께 책을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