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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뛰어서 출근하기


펩시콜라의 흥미로운 이모지. 동그란 얼굴 위로 맺힌 물방울이 꼭 땀 같아서, 오늘 뛰면서 느낀 감정과 잘 동화된다. 지난 주 노쓰밴의 호텔에서 열린 워크샵 때 찍은 사진이다. 


늘 한 번쯤은 시도해 보고 싶었다. 뛰어서 출근하기, 혹은 아예 일상적으로 통근하기. 하지만 달리기 자체보다 그런 시도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여러 변수들이 그런 시도를 막았다. 갈아입을 옷가지, 속옷, 수건, 점심 도시락과 간식, 지갑, 셀폰 등을 담은 백팩을 짊어지고 뛰어야 할텐데, 그 무게와 성가심이 여간 아닐 듯싶었다. 백팩을 짊어질 필요성을 없애자면, 아니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백팩의 무게를 대폭 줄여 덜 부담스럽게 하자면, 아예 일주일치 옷을 회사에 갖다 놓거나 점심을 직장에서 사 먹어야 할 터였다. 그러면 매주 그만한 옷을 갖다 놓고, 그간 입은 옷가지들을 다시 가져오자면 가외로 한 번 더 왕복을 해야 한다는 뜻이고, 적어도 자전거나 차를 이용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정도로 골치를 썩일 만한 가치는 없겠다는 게 늘 결론이었고, 그래서 통근은 처음에는 버스로, 그 다음엔 자전거로 하게 되었다.


지난 주 금요일, ‘뛰어서 통근’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노쓰밴의 호텔에서 종일 워크샵이 열렸다. 점심이 제공되니 도시락을 쌀 필요가 없었고, 금요일이라 복장 부담도 적었으며, 무엇보다 집과 호텔 간의 거리가 채 5 킬로미터가 되지 않았다. 자전거 통근용 백팩에 옷가지를 넣고 뛰어보았다. 별로 무겁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더 큰 짐이었다. 랩탑을 넣은 게 - 아무리 ‘울트라북’이라지만 - 더 큰 부담이었다. 무게를 재 보니 고작 6 킬로인데, 막상 등에 짊어지고 뛰는 느낌은 10 킬로그램 이상 나가는 것 같았다. 백팩 끈을 바짝 죄고, 가슴께와 허리의 고정용 끈도 허리띠처럼 바투 묶었지만 뛸 때마다 상하좌우로 요동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실상 뛴 거리는 왕복 10 킬로미터였지만 몸으로 느낀 에너지 소비량 (칼로리 소모량)은 그보다 3, 40%쯤 더 뛴 것 같았다. 내 몸무게가 지금보다 10 킬로그램쯤 더 무거워지면 뛸 때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 밴쿠버에서 무엇을 기대하랴? - 금요일 아침, ‘뛰어서 출근’을 다시 시도했다. 이번엔 제대로, 밴쿠버 워터프런트까지 12 킬로미터를 뛰었다. 백팩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도시락은 베이글을 쌌고, 집에서 내려 담아가는 커피 보온병도 뺐다. 사실 금요일엔 같은 사무실 동료와 함께 밖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정례 행사처럼 굳어진 마당이었다. 청바지와 윗도리, 속옷, 수건, 지갑, 셀폰, 아마존 킨들 정도로, 내딴에는 짐을 최소화했다. 



지난 12월, MEC에서 150달러 짜리를 109달러에 할인해 구입한 팀벅투 (Timbuk2)의 사이클리스트용 백팩 에스페샬 부엘로 (Especial Vuelo, 지금은 그 사이트에서 보이지 않는다. 단종한 듯). 비교적 컴팩트하고 (25리터) 착용감도 좋다. 물론 방수다. 하지만 달리기 용으로는 너무 크고 둔하다. 저걸 메면 대략 아래와 같은 모양이 된다. 자전거를 타는 데는 백팩이 좀 커도 괜찮지만, 저걸 짊어지고 뛰기는 좀 버겁다. 



그저 배낭 하나 맸을 뿐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물론 울트라마라토너들이 매는 이른바 연료 팩 (fuel backpack), 혹은 갈증해갈용 팩 (hydration backpack)처럼 크기와 착용감을 최적화한 도구들과는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달리는 데 짐이 될 줄이야! 백팩 끈을 가능한 한 바투 매서 몸에 밀착되도록 애를 썼지만 그래도 마치 발목에 - 등이 아닌 - 쇠 족쇄라도 찬 것처럼 움직임이 무겁고 둔해졌다. 너무 과장한다고? 아마 그럴지도… 하지만 맨몸으로 뛰는 것과, 등에 무엇 하나 짊어지고 뛰는 것은, 정말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진행 거리가 길어지면서 몸도 좀더 적응이 되고, 어깨 위에서 쓰닥거리는 백팩 끈의 감촉도 익숙해졌지만 속도를 붙이긴 어려웠다. 


세컨드 내로우즈 다리를 건너는데 이미 30분이 흘렀다. 통근 거리의 절반도 채 통과하지 못했는데 이미 그렇게 시간이 간 것이다. 자전거로 갔다면 거의 사무실에 닿았을 시간이다. 대략 한 시간 10분 정도를 예상했고, 실제 사무실에 닿은 시간도 그 정도였다. 7시15분에 집을 나와서, 8시20분 남짓에 라커룸에 닿았다. 샤워 하고 옷 갈아 입고…


매일 출퇴근을 달리기로 하긴 무리겠다. 몸에 따로 짊어지는 것 없이 달린다고 해도 편도로만 한 시간 남짓한 소요 시간은, 특히 마음 바쁜 아침에는 적잖은 부담이다. 어쩌다 한 번, 스스로에게 ‘심심한데, 이런 시도는 어때?’라고 놀래키는 식의 깜짝 이벤트로는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해볼 만하겠다. 평소에는 역시 자전거로 다니고, 달리기는 점심 때나, (특히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여름철에는) 이른 아침에, 몸에 특별히 뭘 짊어지지 않은 채 하는 게 더 낫겠다. 익히 예상했던 결과지만, 그래도 막상 시도해 보는 것과, 그저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상상만 하는 것은 퍽이나 다르다.


이따 오후에는 주행 거리를 줄이기 위해 일단 노쓰쇼어까지는 씨버스로 갈 생각이다. 거기에서 집까지는 5 킬로미터 남짓이니 큰 부담없이 뛰어서 돌아갈 수 있겠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면 아내에게 차를 태워달라고 전화할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