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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설/패밀리데이

올해는 우연히도 한국의 설과 BC의 '가족의 날' (Family Day) 연휴가 겹쳤다. 캐나다의 모든 주들에서는 매년 2월 셋째 주 월요일을 가족의 날로 정해서 토일월 사흘을 쉬는데, 유독 BC만 한 주 빨리 '긴 주말'을 난다. 다른 주들과 같이 셋째 주로 통일하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고 사리에도 맞지 않느냐는 말이 많았는데, 올해만 놓고 보면 한국인과 중국인 처지에서는 고마워해야 할 우연이 된 셈이다.


설은 북미에서도 점점 더 많은 주목을 받아간다. 그 공로의 9할은 중국인들에게 있다. 영어권에서 설의 동의어가 'Chinese New Year'로 사실상 굳어진 것도 그러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내 동료들 중에 퍽 사려깊은 한두 사람은 일삼아 Chinese라는 단어 대신 Lunar라는 말을 써서, '음력 새해를 축하한다' (Happy Lunar New Year)라고 덕담하기도 했는데, 그건 정말 예외적인 일이었다 (그 동료에게 '너 참 'politically correct'하구나, 칭찬해줬다). 누구나 Happy Chinese New Year이고, 더 나아가 Gong Xi Fa Cai (만다린) 아니면 Gong Hey Fat Choy (광동어)이다 (둘 다 '恭禧發財'라는 뜻).



밴쿠버에서 해 본 지가 퍽 오래 되었다. 비가 주류였고, 어쩌다 잠깐 그친 경우에도 하늘은 어두운 회색 구름을 잔뜩 펼친 채 해를 보여주지 않았다. 느낌으론 그게 2, 3주쯤 이어진 것 같다. 토요일에 잠깐 해를 보여줄 듯하더니 일요일 아침엔 다시 비를 뿌렸다. 일요일이면 적어도 두 시간반에서 세 시간 정도 달리기를 하는 나로서는 비가 달가울 수가 없다. 비가 오든 말든 무조건 뛴다고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어쨌든 비가 오는 것보다는 오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반갑다. 아침 여섯 시쯤 뛰러 나갈 때만 해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일기 예보는 7시10분 무렵부터 비가 올 거라고 대단히 구체적으로 알려준 터였다. 아니나다를까, 한 시간 남짓 달려 웨스트밴쿠버 쪽, 라이온스게이트 다리가 보이는 앰블사이드 공원에 들어서자 갑자기 후두둑 빗발이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자 위와 같은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내 머리 위로는 비와 우박이 동시에 쏟아지는데, 저 멀리 동쪽 하늘로는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름답고 장엄했다.



집에서 나와 서쪽으로 4 킬로미터쯤 달리면 노쓰밴의 다운타운에 해당하는 론스데일에 닿는다. 그 선창에서 마주보이는 곳에 저렇게 밴쿠버 워터프런트가 펼쳐져 있다. 맨 왼쪽이 하버센터, 앞으로 배처럼 납작하게 누운 건물이 캐나다 플레이스이다.



밴쿠버의 화려한 부둣가 풍경에 견주면 노쓰밴 쪽은 소박하다. 론스데일 부두인데, 부두 (Quay)의 두음자를 딴 Q 사인이 뱅뱅 돌아간다. 촌스럽고 웃기다. 그 왼쪽으로 멀리, 라이온스게이트 다리가 보인다.



라이온스 게이트 다리를 경계로 동쪽은 노쓰밴, 서쪽은 웨스트밴이다. 막 웨스트밴으로 진입해 앰블사이드 공원 초입을 달리다, 저 일출의 장관을 구경하려고 잠깐 섰다. 검은 실루엣은 밴쿠버 도심과 항만의 형상이다.



하루를 더 쉬는 월요일, 한국은 설이고 이곳은 패밀리데이이다. 마침내 해가 나왔다! 화요일까지 맑고 수요일부터는 다시 일주일 넘게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 밴쿠버다운 날씨다. 린 계곡 (Lynn Creek)의 트레일을 가족과 함께 걸었다. 한 시간 넘게, 5 킬로미터 가까이, 제법 운동이 되게 걸었다.



주말 동안 여러 번 보고 감상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디지털 콘서트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구스타프 말러의 대작 제3번 교향곡을, 말러 전문가로 꼽히는 이반 피셔가 객원 지휘했다. 들어도 들어도 좋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그 압도적 깊이와 스케일과 아름다움이, 더없이 잘 표현된 음악이라는 생각이다. 각 악장이 묘사하듯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꽃과 들판이, 동물과 숲이, 인간이, 그리고 천사들이 전하는 말이, 곡진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6악장의 장려하기 그지없는 총주가 외칠 때, 그런 소리를 들을 때, 나는 소름 돋는 감동을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