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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오해 받은 곰


책을 표지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조언이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게 불가능하다. 표지만 보고, 혹은 속 그림 한두 장만 보고, ‘질러버리는’ 것이다. <사람으로 오해 받은 곰> (The bear that wasn’t)도 그런 경우다.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만나게 될 때까지, 나는 이 책을 몰랐다. 무려 1946년에 나온 동화책인데, 이런 사랑스럽고 익살맞은 책이 있는 줄을 몰랐다! 저자는 벅스 버니, 대피 덕, 와일리 코요테 등으로 유명한 루니 튠즈의 감독을 지낸 프랭크 태쉴린 (1913-1972)이라는 사람이다. 


아래는 내가 페이스북의 문예지 소개로 보게 된 그림이다. 거기에 적힌 내용이, 적어도 내게는 더없이 서정적이면서도 따스한 느낌으로 읽혔다. 곰은 자신이 사는 숲의 나무들에 달린 잎들이 노라색이나 갈색으로 변하면서 하나둘 지는 것을 본다. 거위들이 남쪽으로 날아가고 잎이 지면 겨울이 곧 찾아오고 눈이 숲을 덮으리라는 것을 곰은 안다. 굴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야할 때인 것이다. 두 페이지의 그림이, 나는 그렇게 마음에 들 수가 없었다. 이 책을 꼭 찾아보리라. 



마침 구글 스토어에 전자책으로 나와 있었다. 냉큼 샀고, 그 날 저녁에 성준이에게 읽어주었다, 라기보다는 함께 읽었다. 몇몇 익살맞고 유머러스한 그림과 표현들에선 독서 삼매경에 빠진 아내를 방해하며 “이것 봐, 이것 봐, 킥킥” 웃기도 했다. 


겨울잠에서 깨어보니, 아니, 여기가 어디지? 숲은 다 어디로 갔어? 세상이 바뀌어 버렸다. 숲은 다 날아가버리고, 굴 위로 커다란 공장이 서 버린 거다. 아직 잠에서 덜 깬 곰은 어슬렁거리다 공장 감독한테 발견돼 일은 안하고 게으름을 피운다는 꾸지람을 듣는다. 나 사람 아닌데요, 곰인데요? 감독은 낄낄 웃으며, 너는 털 코트 차림에 면도가 필요한 실없는 게으름뱅이일 뿐이라며, 누굴 속이려 드느냐고 도리어 면박을 당한다. 계속 곰이라 우기니 곰은 공장장에게 인계되고, 다시 3위 부사장, 2위 부사장, 수석 부사장을 거쳐, 사장에게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나 곰인데요?’라는 주장은 끝내 먹히지 않고, 그가 곰이라는 - 혹은 곰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결국 동물원과 서커스장까지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결론은, 곰은 곰이 아니라 면도가 필요한, 털 코트 차림의 게으름뱅이라는 것. 결국 곰은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아래 그림이다. 서글픈 내용인데, 그림이 더없이 익살맞고 사랑스러웠다.



어느날 공장은 문을 닫고, 곰도 공장에서 풀려난다. 해고된 건가?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로 거위들이 남쪽으로 날아간다. 단풍이 들고 잎이 진다. 어, 이제 겨울잠을 자야 할 때인데...하지만 난 곰이 아니잖아? 곰은 멀쩡한 굴을 버려두고 눈밭에서 어떻게든 버텨보려 한다. 왜? 난 곰이 아니니까… 


얼어죽기 직전, 곰은 불현듯 벌떡 일어나 굴로 들어간다. 굴 안은 푸근하고 따뜻하다. 삭풍도 없고, 차디찬 눈도 미치지 못한다. 곰은 다시 온몸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는 소나무 가지로 만든 침대 위에 누워, 행복하게 잠을 자면서, 겨울잠을 자는 곰들은 누구나 꾸는 달콤한 꿈을 꾼다. 남들이 다 자기를 곰이 아니라고 해도, 이젠 무의미하다. 따지고 보면, 나는 그들의 말을 진심으로 믿은 적이 없었어, 그렇지 않아? 그래 나는 실없는 사람이 아니었어. 나는 곰이지. 


이 짧은 동화에 필요 이상으로 깊은 분석과 해석을 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때때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잊은 채, 그저 주위 사람들의 압력이나 바람이나 요구에 못 이겨, 우리가 아닌, 우리 자신의 본성일 수 없는 전혀 낯선 정체성으로 가면을 쓴 것처럼 산 적은 없었는지, 혹은 아직도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닌지, 이 동화를 읽으면서 잠깐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별점은 다섯에 다섯. ★★★★★ 구글로 검색해 보니 이 동화를 바탕으로 한 비디오도 나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