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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래틀 - 베를린 필의 베토벤 사이클


'약동하는 베토벤'. 사이먼 래틀 경과 BPO의 베토벤 사이클을 들으며 받은 첫 인상을 두 마디로 표현하면 그렇다. 속도를 다소 높이고 울림은 약간 줄이고 기름기와 어깨의 힘은 뺀, 그러나 팽팽한 긴장감과 에너지는 풍만한, 굉장한 베토벤 사이클이다.


'어, 이건 좀 다른데?'


베토벤 교향곡 5번의 첫 몇 소절이 나오자마자 든 느낌이다. 카를로스 클라이버와 빈 필의 5번이 떠올랐다. 제시부의 긴장감과 템포가 그 연주 못지 않았다. 오케스트라의 편성 규모만 다소 줄어든 느낌이랄까? 베토벤 당대의 연주 형식과 규모, 속도를 따르면서도 현대적 세련미를 잘 섞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이하 BPO)의 온라인 서비스인 디지털 콘서트 홀 (Digital Concert Hall)을 통해 사이먼 래틀 경과 BPO의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을 듣고 있다. 아직 전곡을 다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5번, 3번, 1번을 감상한 바로는 근래 들어본 베토벤 사이클 연주들 중 단연 돋보이는 수연이라는 생각이다. 머릿속에서 비교 대상으로 금방 떠오르는 사이클로는 리카르도 샤이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2011년 음반, 에마누엘 크리빈과 라 샹브르 필하모니크의 2011년 음반, 그리고 마리스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2013년 음반이다. 물론 다 명연이라고 여겨지지만 - 그러니 그라모폰 상도 받았겠지 - 래틀-BPO의 연주에 가장 호감이 간다. 샤이와 얀손스의 연주는 현대적 연주 형태를 따랐고, 크리빈은 당대 악기를 고스란히 재현한 정격 연주로 신선미를 안겨주었다. 래틀-BPO의 연주는 화면으로 보기에는 현대적 스타일을 고수한 듯한데, 들리는 소리는 의외로 고풍스럽다. 정격 연주를 표나게 내세우지 않았지만 왠지 정격 연주의 맛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규모를 표나게 줄이거나, 악기 편성에 큰 변화를 준 것 같지도 않은데, 소리가 유독 더 담백하다. 기름기를 뺀, 소박한 맛이다. 그러면서도 전반적으로 다소 빠르게 템포를 가져가 밝고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소리는 크지 않지만 연주자들은 촘촘한 밀도와 자로 잰 듯한 합주력, 빠른 템포와 절제된 균형 감각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연주자들의 표정과 몸짓은 연주를 한껏 즐기고 있음을, 때로는 시위하는 것처럼 표나게 드러낸다. 바꿔 말하면 '행복한 자신감'쯤 될텐데, 그게 거만하거나 위악적으로 보이지 않아서 좋다. 


온라인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를 볼 때마다 새삼 감탄하고 또 감탄한다. 어떻게 저토록 정교하면서도 힘차고, 근육의 힘을 유감없이 과시하면서도 눈물겹도록 섬세한 서정성까지 보여줄 수 있을까! 어쩌면 저토록 약동하는 생명력을, 폭발하는 힘을 느끼게 하면서도, 완벽에 가까운 절제와 균형으로 보는/듣는 이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고 도리어 편안함과 신뢰감을 안겨줄 수 있을까! 어떻게 말러든 베토벤이든 모차르트든 바흐든, 오케스트라의 편성이 100명을 넘든, 혹은 그 절반보다 작은 규모든 상관없이, 마치 실내악단이 연주하듯 정밀하면서도 친밀한 합주력을 뽐낼 수 있을까!


래틀-BPO이 베토벤 사이클을 연주한다는 소식을 처음 봤을 때, 과연 어떤 연주를 보여줄까 기대감이 컸다. 그와 함께, 래틀이 벌써 BPO와의 '음악 유산'을 준비하나, 하는 호기심도 일었다. BPO 측의 계약 연장 제안을 거절하고 2018년, BPO와의 계약이 만료되면 영국의 런던 심포니로 간다는 소식이 이미 오래 전에 전해진 탓이었다. 2018년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만 베토벤 사이클이 갖는 남다른 의미 때문에 그런 호기심도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래틀이 BPO를 통해 전하고 싶은 유산이든, 그저 오래 전부터 계획한 프로젝트든, 음악을 듣는 이들로서는 이들의 새로운 베토벤 사이클이 반갑기만 할 뿐이다. 더욱이 BPO 특유의 위압적 힘과 울림을 애써 줄이면서 과장되지 않게, 담백하고 깨끗하고 민활한, 새로운 베토벤을 들려주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되풀이해서 듣게 될 것 같은, 참 좋은 연주다. ★★★★★



Being mightily impressed by the superb sound and harmony Berlin Philharmonic is manufacturing with so much ease and joy. Sir Simon Rattle and BPO just concluded their Beethoven Cycle with No. 9. 


I haven't tried them all yet, but given the deep satisfaction I experienced from the performance of No. 5 and No. 3 "Eroica," I have little doubt that Rattle-BPO's cycle would be a tremendous success. Their playing is meticulous and superb all along as usual, and often explosively fast, dynamic and intense to the extent to make you feel cathartic and goosebumped. 


Too many superlatives I may have pulled here, but can't help it for this amazing Beethoven cycle. Bra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