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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서점을 둘러보는 맛

어디 낯선 도시나 마을에 가서 좋은 서점을 만나면 반갑다. 반가움을 넘어 살짝 흥분되기까지 한다. 거의 모든 비즈니스 업종이 거대 기업들의 손아귀에 들어가 획일화되고 프랜차이즈로 축소 - 아니, 전락 - 하는 요즘의 달갑지 않은 대세를 고려하면 반가움은 더욱 크다. 그런 지역 독립 서점들의 미래가 별로 밝지 않다는 현실 때문에, 반가움 뒤에는 종종, 다음에 와도 살아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바람과 회의가 스며들기도 한다.



모자이크 서점

지난 11일 오카나간 마라톤을 뛰기 위해 컬로나에 갔다가, 실로 오랜만에 좋은 서점을 만났다. ‘모자이크 서점’ (Mosaic Books)이라는 곳으로, 납작납작하고 아담한 벽돌 건물들이 더없이 정겹고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다운타운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서점에 대해 ‘좋다’라고 여기는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내가 ‘좋다’고 평가하게 되는 몇 가지 기준은 진열된 책들의 다양성, 그렇게 진열하게 된 근거 - 이를테면 직원들이 뽑은 staff’s picks라든가, 서점에서 뽑은 권장 도서들, 작가의 친필 사인이 든 책들만 모아놓은 코너 등 -  그리고 무엇보다 서점 실내가 주는 전반적인 ‘느낌’과 분위기이다. 



모자이크 서점은 그런 면에서 독특했다. 어디를 가나 다 똑같은 형식과 모양으로 진열해 놓은 인디고-챕터스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약간 어수선한 듯하면서도 모자이크 서점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고집, 개성, 기준이 느껴졌다 (위 사진을 클릭하면 좀더 크게 볼 수 있다). 



모자이크 서점에서 산 책들. 토머스 킹, 밀란 쿤데라, 토머스 핀천, 줄리아 스펜서 플레밍, 켄 폴렛...


특히 ‘할인 코너’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캐나다 서점들을 사실상 집어삼키다시피 한 인디고-챕터스 프랜차이즈의 할인 코너의 대부분이 그저 그런, 철 지난 책들인 데 반해, 모자이크 북스의 할인 코너에 놓인 책들 중 많은 경우는, 출간 시기가 제법 지났지만 여전히 양서로 평가받는, 따라서 언제라도 사보고 싶은 책들이었다. 어, 이런 책도 할인이네, 어 이것도, 저것도…! 그런 책들을 둘러보다 보니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서점에 머물게 됐다. 나오면서도,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매클라우드 서점

매클라우드 서점 (McLeod Books)은,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아는, 아주 유명한 중고 서점이라는 사실을, 나는 최근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밴쿠버뿐 아니라 캐나다를 통틀어서도 손 꼽히게 유명한 중고 서점이란다. 20세기 초반, 혹은 그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서들도 꽤 많아서, 서점에 들어가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 두는 게 좋다는 조언까지 있었다 (캐나다의 잡지 가이스트 (Geist)에 길게 실린 서점주 돈 스튜어트의 프로필).


나는 웨스트 펜더 가 (W. Pender St.)와 리차즈 가 (Richards St.)에 자리잡은 이 서점을 매일 자전거로 퇴근할 때마다 보아 왔다. 하드커버 두 권을 사면 세 권째는 30% 할인해 준다는 문구나, 시애틀에서 열리는 책전시회 행사 따위의 광고가 창문에 붙은 것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곁눈질로 읽곤 했다. 그 때도 그저 평범한 중고 서점인가 보다 했다.



그러다 지난 금요일 점심때 서점에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실내를 가득 채운 책들의 규모에 놀랐고, 그런 책들이 언뜻 보기에 맥락없이 아무렇게나 쌓이고 꽂힌 것 같아서 놀랐으며, 뜻밖에 구석구석마다 앉거나 서서 책을 찾는 손님들이 예상보다 많아서 놀랐고, 쌓이거나 꽂힌 책들의 다양성, 출간 시기 등에 또 놀랐다. 또 무슨 책을 어디에서 찾아야 좋을지 전혀 맥락을 짚을 수 없어서 당황했고, 전혀 예기치 못한 주제인데 의외로 흥미로워 보이는 책들이 많아서 또 당황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책 하나는 ‘로빈슨 크루소’로 유명한 작가 대니얼 디포의 ‘전염병 돌던 해의 일지’ (A Journal of the Plague Year)였다. 



결국 책 한 권 사들고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에 또 오리라 기약했다. 12월 크리스마 연휴때 밴쿠버에 놀러오기로 한 선배 생각도 났다. 골동품, 중고품들에 특히 관심이 많은 선배였다. 여기에 모시고 오면 반색을 할 게 분명했다. 좋은 서점 하나 찾았다!


기억하고 싶은 다른 인상적인 서점들

빅토리아에 있는 먼로 서점 - 관련 블로그 포스팅 (빅토리아 여행기에 잠깐 언급).

에드먼튼에 있는 오드리 서점 - 관련 블로그 포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