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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2016년 보스톤 마라톤


"Accepted..."


무슨 합격 통지서라도 받은 기분이다. 내년으로 120회를 맞는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겠다는 내 지원서가, 커트라인을 통과해 수용되었다는 이메일을 오늘 받은 것이다. 내 나이대 (45-49세)의 보스톤 마라톤 참가 자격 하한선은 3시간25분이다. 보스톤 마라톤이 인정하는 다른 마라톤 대회에서 그 시간 안에 들면, 일단 등록을 할 자격이 생긴다. 만약 3시간24분30초, 3시간24분45초 등과 같이, 그 시간대에 턱걸이한 사람들이 많으면 제한 시간 안에 들어와 놓고도 참가 자격을 얻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2년전 보스톤 마라톤 대회중 테러리스트의 폭탄 공격이 발생한 이후 참가하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서, 그런 불행한 일이 더 많아졌다는 보도를 접했다.


보스톤 마라톤에 참가 자격 제한이 생긴 것은 무엇보다 뛰는 코스가 다른 대회보다 비좁기 때문이다. 옛날 지형과 풍치를 잘 간직한 보스톤의 도로는 상대적으로 비좁다. 그 도로에 무작정 몇만 명을 몰아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3만 명을 다 뛰게 하자면 기록대에 맞춰 차근차근 달림이들을 출발선에서 내보내는데, 기록이 늦은 이들은 첫 출발 시간으로부터 30분 이상 지연된다고 들었다. 어쩌면 그보다 더 늦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스톤 마라톤은 워낙 그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설령 참가 인원을 뉴욕마라톤 수준에 버금가는 5만 명으로 늘리더라도 -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 참가 자격을 일정하게 제한하지 않는 한 모든 인원을 수용할 수 없을 게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주취측은 참가 자격을 얻었다, 얻지 못했다라는 결과를 지원자들에게 이메일로 알리면서, 다 수용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의 이런 성명서까지 내야 하는 상황이다. 많은 달림이들에게 일종의 '버켓 리스트'가 된 셈이다.



보스톤 마라톤의 등록 방식도 특이하다. 참가하려는 이들이 많다 보니 혼잡을 피하기 위해 여러 날짜로 쪼개 놓고, 처음에는 제한 기록보다 20분 이상 좋은 사람들의 등록만 받는다. 며칠 뒤에는 10분 이상, 그 다음에는 5분 이상 앞선 기록을 가진 달림이들의 등록을 허용한다. 마지막 이틀은 제한 기록 안에 들어온 사람 누구나 등록할 수 있게 해놓았다. 나는 이 대회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우연히, 등록 마지막 날에 들어가 이름을 넣을 수 있었다. 주최측에서 요구하는 마라톤 기록은 지난해 10월에 뛴 빅토리아 마라톤의 3시간19분을 제출했다. 



지난 2014년 10월 빅토리아 마라톤 장면. 아빠를 찍는 성준이를 엄마가 찍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은 보스톤 마라톤을 뛰기가, 참가 자격을 따내는 일과는 별도로, 재정적으로 만만찮은 부담을 요구해서, 실제로 대회를 뛰는 일은 거의 포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은 참가 자격을 얻고도, 참가 자격을 얻었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다음에, 다음에, 하고 기회를 미뤄 온 터였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이러다간 언제 뛰게 될지 모르겠다, 라는 생각, 그리고 매년 보스톤 마라톤 참가 자격을 따낼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라는 반문이, 좀 무리를 해서라도 한 번 가보자, 라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만들었다. 


밴쿠버에서 보스톤까지 비행기로 갈까? 그러나 동준이의 발작 위험성이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 직항이 없고 모두 토론토나 몬트리올에서 서너 시간씩 기다렸다가 갈아타야 한다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결국 보스톤에서 비교적 가까운 - 500 km 남짓 된다 - 몬트리올까지 날아가서, 렌터카로 보스톤에 들어가는 쪽을 택했다. 직항이고, 국내선이고, 비용도, 불과 몇십 달러 상관이지만 조금 더 쌌다. 보스톤에서는 마라톤을 전후한 사흘 밤만 자고, 나머지는 부근을 여행하면서 그 때 그 때 숙소를 잡기로 했다. 비행편과 호텔 (몬트리올 1박), 렌터카를 패키지로 묶은 비용만 4천달러에 이른다. 보스톤과 인근 지역에서 묵게 될 호텔, 먹게 될 음식, 보고 체험하게 될 관광 비용은 아직 계산에 넣지도 않았는데...


아무려나, 드디어 보스톤에 가보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더더군다나 달림이들의 꿈인 보스톤 마라톤을 뛰게 된다. 형편 없는 기록으로 겨우 완주나 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될 테니, 또 부지런히 연습을 해야겠지. 좋은 자극제를 하나 얻은 셈이다. 



페이스북에 보스톤 마라톤에서 뛸 수 있게 됐다고 자랑질을 했더니, 예상보다 훨씬 많은 페친분들이 덕담을 해주었다. 너무 많은 분들이 축하를 해준 탓에 - '덕택에'가 아니고 - 마음의 부담이 백배는 더 커졌다. 이것도 불평을 가장한 자랑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