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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빈 문 로

'슬픈기사가 아닌데도 눈물까지 났다. 추석이라서 그랬나?'


페이스북의 절친 - 이런 표현이 가당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 중 한 분이 이런 짤막한 소갯글과 함께 아래 기사를 공유했다. '배우가 공연을 망친 자폐증 어린이를 도리어 옹호했다'라는 내용이다. 정확한 번역은 아니지만 어쨌든 '자폐증'으로 흔히 알려진 오티즘 (Autism) 이야기만 나오면 촉각이 곤두서고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당장 해당 기사를 읽어보았다 (덧붙이자면 'Autism'은 이 증상 자체의 변주 범위가 워낙 넓고 복잡해서, 그러면서도 제대로 진단할 수 있는 역량이 아직 안돼서, Autism Spectrum Disorder'라고 'Spectrum'을 넣는다). ABC뉴스 기사.



브로드웨이 뮤지컬 '왕과 나' (The King and I) 공연 중에 오티즘을 가진 아이 - 라기보다는 'Youth'라는 표현을 <뉴욕타임즈>가 쓴 것으로 봐서 어른 쪽에 가까운, 아마도 동준이와 비슷한 10대 중후반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 가 기이한 소음을 내며 공연 분위기를 해치는 바람에 주변 관객들이 불만을 터뜨렸고, 특히 몇몇 관객은 "저런 애를 왜 데리고 왔느냐" "저 애 쫓아내라" (Get rid of the kid)고 드러내 놓고 아이의 부모를 몰아세웠던 모양이다. <뉴욕타임즈> 기사.



문제의 소동이 벌어진 직후, 대역배우로 현장에 던 켈빈 문 로 (Kelvin Moon Loh)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언제부터 우리가 공연의 감동을 즐긴다는 명분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과 공감마저 내팽개치게 됐느냐는 그의 반문이, 내게는 특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오티즘인 아이를 둔 부모인 나조차도, 공연장에 가서 그런 일을 겪으면 소동을 불러일으킨 쪽의 사정을 이해하려 시도하기보다는, 대체 저런 애를 이런 데 왜 데려왔느냐고 짜증과 화부터 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소란을 피운 오티즘 아이에게 분개한 관객들을 탓하거나 그들에게 서운해하기보다는,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상황에서, 소수 약자의 시각에 설 수 있고, 하여 그들의 처지를 변호할 수 있는 켈빈 문 로의 공감 의식, 비상한 수준의 균형 감각에 더 놀란 편이었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더더욱 감탄하고, 나아가 경외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동준이는 어느새 열여섯 살이고, 고등학교 12학년에 다닌다. 생일이 12월인 덕택에, 아마도 졸업 연도를 한 해 더 연장해서 1년 더 학교에 다닐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그 뒤가 문제다. 무엇을 시킬 수도 없고, 보낼 만한 프로그램이나 기관도 없다. 학교에라도 보내면 적어도 반나절은 보조 교사들이 동준이를 보살펴 주었다. 동준이도 뭔가 '루틴'(routine)이 있었다. 규칙적으로 어떤 활동을 벌인다는 것의 의미는 그에게나 우리에게나 더없이 컸다. 그러나 고등학교 12학년의 제도 교육이 끝나면, 아무것도 없다. 동준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대안도 계획도 없다. 심심하지 않도록 일주일에 몇 번씩 수영이나 걷기나 자전거 타기 같은 체육 활동을 시키는 것이, 아마도 우리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일 것이다. 


그래서 켈빈 문 로의 저 에피소드는 감동적이면서도 서글프다. 해피엔딩이 아니기 때문에, 해피엔딩일 수 없기 때문에 서글프고 암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