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기

인터스텔라


지난 화요일에 본 크리스토퍼 놀란의 걸작 '인터스텔라' (Interstellar)의 영상, 대사, 대화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근래 본 영화/드라마들 가운데, 인터스텔라만큼 가슴을 뒤흔든 것은 없었다. 


우리는 한때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을 보며, 인간은 얼마나 티끌처럼 사소한 존재인가, 저 별들 중 어디엔가 혹시 다른 생명체가 살지 않을까 궁금해 하곤 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아니 우주가 얼마나 크고 깊고 넓은가, 제대로 가늠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경이로워 하곤 했다. 저 별들 중 어떤 것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우리는 단지 그것이 날려 보낸 몇백년, 혹은 몇천년 전의 빛을 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갖곤 했다. 


황량하게 메말라 먼지만이 자욱하게 날리는 지구에서, 쿠퍼는 한탄한다.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의 자리에 경이로워 하곤 했는데, 이젠 그저 땅바닥만을 내려다보며 먼지를 걱정할 뿐이라고. 


We used to look up at the sky and wonder at our place in the stars, now we just look down and worry about our place in the dirt. 


더 이상 회생의 희망이 사라진 지구, 하여 생존의 가능성이 사라진 인류의 마지막 출구는 말 그대로 출구다.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길뿐이다. 그러나 어떻게? 태양계 밖을 벗어날 수 있을 만한 과학 기술의 유무는 차치하고, 수백 수천 광년을 날아가도 인간이 생존할 수 있을 만한 행성은 없다. 


영화는 여기에서 칼 세이건의 소설 ‘컨택트’ (Contact)의 아이디어를 슬쩍 빌려온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인류의 과학 기술과는 견줄 수조차 없는 초고등 생명체가 인류를 위해 토성 근처에 다른 은하계로 가는 지름길 - 웜홀 -을 만들어준 것이다. 전직 우주비행사인 쿠퍼는 인류를 구하겠다는,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딸과 아들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돌아올 기약은 고사하고 생존 가능성조차 미지수인 우주 여행길에 오른다 (그러고 보니 영화 컨택트에도 매커너히가 출연했었다. 흥미로운 우연).



이 영화에 내가 깊이 매료된 것은, 과학적 개연성은 그만두고라도, 어린 시절 수많은 SF 소설과 만화, 드라마, 영화 들에서 읽고 듣고 보았던 우주 여행의 신비, 그 크기와 끝과 길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광대무변 (廣大無邊)의 매혹, 아인슈타인이 들려준 광속 여행자와 일반 사람들 간에 나타나는 시간의 패러독스, 그에 대한 놀라움들이, 인터스텔라에서 더없이 자연스러우면서도 개연성 있는 이야기로 구체화 되고 생생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지구, 태양계, 은하계, 은하군, 웜홀, 인공동면, 우주 여행, 행성 탐사 같은, 이제는 더 이상 신비롭거나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대신 황당무계한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인데, 그러한 거대 담론, 혹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주인공 쿠퍼와 그의 가족, 특히 딸 머프 간의 깊은 사랑, 절박한 그리움과 잘 버무려지면서 현실감을 획득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뛰어난 이야기 전달력, 혹은 천재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나는 쿠퍼가 위의 대사를 말할 때, 굳이 메마를 대로 메마른 묵시록적 지구의 풍경을 떠올릴 것 없이, 지금 현재의 상황을 대입하더라도 시의성은 충분하다고 느꼈다. 지금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밤하늘을 바라보는가? 별들을 보며 우주 여행과 다른 외계 생명체와 다른 은하계나 행성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가? 그저 하고한 날 스마트폰만 내려다보며, 한없는 사소함, 흙먼지처럼 사소한 말초적 오락과 쾌락의 순간적 유혹에 끊임없이 빨려들고 또 빨려들 뿐이 아닌가?


영화 인터스텔라는 오! 하고 감탄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멋진 대사들로도 나를 매료시켰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IMDB에서 퍼왔다.



그러나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 쿠퍼를 연기한 매튜 매커너히와, 그의 딸 머프를 연기한 매켄지 포이 (어린 머프), 제시카 채스태틴 (장년의 머프) 등이었다. 딜런 토머스의 시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을 주문처럼 외우는 브랜드 박사 역의 마이클 케인, 그의 딸로 쿠퍼와 우주 여행에 동행하는 앤 해서웨이, 그리고 깜짝 출연한 맷 데이먼 등의 연기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특히 매커너히가 보여주는 부성애는, 그가 대사 한 마디 하지 않고, 그저 울음을 삼킬 때조차, 사무치게 내 마음 속에서 공명했다. 적어도 한 번 더, 찬찬히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조만간 그러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