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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손스-BRSO의 쇼스타코비치 5번 카네기홀 실황


유튜브는 하루가 다르게 눈과 귀의 보물창고가 돼 간다. 특히 음악에 관한 한, 이미 녹음되거나 녹화된 것치고 없는 게 없는 것 같다. 음질이나 화질이 미흡한 경우가 여전히 너무 많고, 정말 되지도 않은 아마추어의 엉터리 영상물이 이물질처럼 섞인 경우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양과 질 양쪽에서, 유튜브만큼 방대한 규모의 영상물을 보유한 온라인 매체는 아직 달리 없는 것 같다.


금요일 저녁, 일주일 중 마음이 가장 편안해서 정말 나비처럼 어디든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어제 저녁, 우연히 또 하나의 보물을 만났다. 마리스 얀손스와 바이에른(바바리아) 방송 교향악단 (BRSO)이 연주하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5번. 워낙 대중적이어서 음반도 그만큼 차고 넘치지만 그 중에서도 얀손스의 연주는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키릴 콘드라신, 쿠르트 잔데를링과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석 중 하나다. 



보통 5번의 전범으로 치는 예브게니 므라빈스키의 연주는 내 귀에는 너무 군대스럽고 전투적으로 들리는 데다, 고통과 비애의 정서가 덜 묻어난다는, 정말이지 나만의 편견 때문에, 굉장한 연주, 카리스마 넘치는 연주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썩 자주 듣게 되지는 않는다. 실은 콘드라신의 연주도 그와 비슷한 군대적 이미지를 너무 강하게 풍긴다는 게 내 느낌이지만... 


한편 레너드 번스타인의 연주는 경쾌하다 못해 지나치게 가볍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3악장의 비장미가 잘 표현되기는 했지만, 번스타인의 쇼스타코비치는 특히 4악장의 '페더급' 종결 방식 때문에 어두운 비장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 미친듯한 4악장의 과속 질주는 그 나름 쾌감도 주지만, 이런 식의 폭주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만든다 (하기사, 쇼스타코비치 본인이 그의 연주를 듣고, 뭐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라고 승인하기는 했지만...). 



얀손스는 그들에 견주면 균형감이 좋다. 너무 군대 행진곡 같은 맛도 주지 않고, 너무 가볍다는 느낌도 주지 않는다. 매끈하게 잘 다듬어진 연주를 들려주면서도 거칠거칠한 맛을 잘 살려낸다. 특히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소리는 비엔나 필하모닉 같은 지나치게 세련된 느낌을 주지도, 베를린 필하모닉처럼 완벽하게 설계된 정밀 기계의 빈틈 없는 가동을 떠올리게 하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세련미, 적절한 균형감, 따뜻한 목질감을 느끼게 하는 소리를 낸다 (라고 써놓고 보니, 이게 말이 되냐, 하는 회의감이 밀려온다. 완전히 나만의 편견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느낌은,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 오슬로 필하모닉 같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을 때도 떠올랐던 느낌인데, 왜 그런 되도 않는 편견이 자꾸 피어오르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유튜브 비디오는 여기에서 감상할 수 있다. 미츠코 우치다와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4번까지 포함된, 더 긴 비디오는 여기. 비디오를 굳이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저작권 문제로 언제 삭제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신 뉴욕의 클래식음악 전문 라디오 방송인 WQXR의 실황 '녹음'을 넣었다.)



얀손스-BRSO의 연주에서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잘 통제된 템포와 음향의 균형이었다. 특히 둔중하면서도 비장하게 시작해 극적으로 속도를 붙이는 4악장 도입부의 템포 변화는 대단히 인상적이고 만족스러웠다. 곡 전체에 걸쳐 어느 악장 하나 빠진 구석 없이, 적절한 긴장감을 잘 유지하면서도 매우 잘 다듬어진 호연을 펼쳐 보였다.


얀손스-BRSO의 카네기 홀 실황은 참 황홀했다. 명연이었다. 얀손스야 '거장'이라는 표현이 전혀 지나치지 않은 명 지휘자인 데다, 므라빈스키에게서 배운 '러시아통' 아닌가. 쇼스타코비치의 가장 빼어난 해석자 중 한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BRSO는 얀손스와 더불어 최선을 다한 연주를 들려준다. 카네기 홀의 울림도 나무랄 데가 없다. 



하지만 이 연주를 보다가 정작 내가 반한 대목은 소리가 아니라 '그림'이었다. 4악장 피날레 부분에서 팀파니 연주자가 팀파니를 치는데 카메라가 그 장면을 뒤에서 잡았다. 카네기 홀의 전체 그림이 한 눈에 들어왔다. 별이 빛나는 밤, 무수한 별들이 쏟아질 듯한 밤 풍경이 거기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