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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보고 듣는 재미


토요일 아침 10시, 독일 베를린의 필하모니 홀에서 연주된 베를린 필하모닉의 말러 2번 '부활'을 '라이브'로 감상했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제 성화에 아내도 옆에 앉아서 중반 이후를 함께 봤습니다.


말러의 음악을 다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2번을 특히 더 사랑합니다. '다 좋아한다'라고 말하긴 아직 자격 미달이긴 합니다. 8번 '천인 교향곡'과 '대지의 노래'는 아직 그 진가를 제대로 느낀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죠. 멀지 않아 그 음악들에도 깊이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만...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인 사이먼 래틀의 말러 연주를 다 감상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2번은 래틀의 장기라고 할 수 있죠. 그가 지휘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도 어렸을 때 2번 연주를 보고 깊이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말러의 교향곡들은 스케일이 큽니다. 연주 시간 자체가 엄청나게 길다는 점에서뿐 아니라, 연주에 필요한 오케스트라 단원의 숫자, 특이한 악기들이 여느 작곡가의 교향곡들에 견주어 월등히 더 많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말러의 연주회는 음악 자체를 즐기기도 전에, 연주회가 막 시작될 무렵의 부산한 움직임 때문에 가외의 흥분감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일단 무대가 꽉 찹니다. 먼저 합창단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앉을 자리 뒤로 줄지어 들어와서 앉습니다. 오늘도 다 까만 옷으로 통일했군요. 이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들어오고 또 들어옵니다. 큰 북이 놓이고, 팀파니가 한 대 더 들어서고, 하프도 한 대만으로는 부족해서 두 대가 서고, 관악도 4관만으로는 모자라 8관이 들어찹니다. 단원들도 공간이 부족해 서로 바짝바짝 당겨 앉습니다. 뭔가 굉장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기대가 생깁니다.



그뿐입니까. 연주 도중, 돌연 홀 바깥 어디에선가, 아마도 복도겠지요, 은은한 트럼펫 소리가 울려퍼집니다. 홀 안의 단원들은 가만히 앉아 있는데 소리는 어디에선가, 말 그대로 '천상에서' 들려오는 듯, 은은하게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청중은 이 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봅니다. 그리고 신기하다는 듯 슬몃 웃음을 짓습니다. 홀 안이 아닌 밖에서, 홀 안으로 들어오는 트럼펫의 소리는 지극히 아름답습니다. 마치 꿈 속에서 듣는 소리 같지요. 말러가 음향 효과에 얼마나 깊은 지식을 가졌는지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사소한 대목일 수도 있지만, 관이 연주될 때, 악기를 높이 쳐드는 모습도, 쏠쏠한 볼 거리입니다. 특히 프렌치 혼들은 마치 하늘을 쳐다보듯이 고개를 높이 들고 울어댑니다. 멋있어요. 1번 '거인'을 연주할 때는 4악장 막바지에서 혼 연주자 여덟 명이 아예 다 일어나서 혼을 붑니다. 그렇게 하라고 지시까지 돼 있다고 하지요. 말러의 쇼맨쉽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한데, 연주의 클라이맥스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듭니다. 역시 멋있죠. 


사실 말러가 놀라운 점은 여느 교향곡 연주에 소요되는 오케스트라의 규모보다 두 배, 혹은 세 배쯤 되는 단원들과 악기들을 쓰면서도, 각 악기의 소리가 서로를 뭉개거나 가리거나 부딪히지 않고, 저마다의 소리를 또렷이 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점입니다. 


말러는 극단적입니다. 아마 그래서 더 극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이올린 독주, 혼 독주, 플루트나 클라리넷 독주가 교향곡 중간 중간에 흘러나옵니다. 그 선율의 아름다움이란! 그런가 하면 오케스트라 전체가 한꺼번에 포효할 때는 홀이 터져나갈 것처럼 요란하지요. 피아니시모와 포르티시모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말러의 음악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정신병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제 귀에는 늘, 언제나, 아름답고 감동적이기만 합니다. 


2번을 들을 때마다, 특히 5악장의 오케스트라 총주, 그에 이은 합창단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합니다. 늘 그렇습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데도, 말러를 들으면, 정말 신이 존재할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들을 때마다 우주의 광활함을 상상하게 하는 3번의 피날레에서도 그렇습니다. 


토요일 하루, 말러 덕택에 새삼 행복했습니다.
(아래 유튜브 비디오는 2012년 말러 연주의 트레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