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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파괴 (Digital Disruption)

우연한 기회에, 제임스 매퀴비의 <디지털 파괴> (Digital Disruption)를 번역하게 됐다. 번역한 지는 6개월쯤 지났는데 이제서야 나오게 됐다. 책이 나오면 기쁘고 설레는 마음보다는, 출판사에 부담을 지우지 않을 만큼만 책이 팔렸으면 좋을텐데, 라며 조마조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 앞선다. 아래는 역자의 글




북미의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만화 ‘딜버트’ (Dilbert)의 스코트 애덤스는 책도 여러 권 썼다. 그 중 ‘딜버트가 본 미래’ (The Dilbert Future)라는 책에서 애덤스는 ‘다른 모든 게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을 인간의 본성’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는다. 


어리석음 (Stupidity)

이기심 (Selfishness)

성욕 (Horniness)


<디지털 파괴>의 저자 제임스 매퀴비가 “인간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똑같다.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원해 온 똑같은 것들을 원한다.”라고 강조하는 대목에서, 나는 애덤스가 유머러스하게 설파한 ‘인간 본성 불변의 법칙’을 떠올렸다. 그와 함께, 디지털 시대에도 인간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데서 가외의 신뢰감을 느꼈다. 


온라인과 인터넷에 친숙한 젊은 세대를 마치 전혀 다른 종(種)이라도 되는 것처럼 ‘디지털 신인류’, ‘디지털 세대’, ‘디지털 원주민’ 등으로 부르는 세태를 고려할 때, 더욱이 디지털 트렌드에 대해 누구보다 밝고, 하여 ‘디지털 파괴’를 말하는 이로부터 “인간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똑같다. 변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듣는 느낌은 퍽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은이는 변한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소비자들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디지털 덕택에 이들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자주, 그리고 더 완전하게 자신들의 욕구가 충족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근본적 욕구와 충동들을 풀어내는 방식은 바뀌었다. (…)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뭇 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을 현격히 더 매력적인 환경에 갖다 놓았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은, 자본주의 체제의 용어로 바꾼다면 소비자는, 디지털 덕택에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력해졌고, 원하는 것은 거의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우스 클릭 한두 번으로 한 사이트에서 다른 사이트로 순간 이동하고, 불과 몇십, 몇백 원의 가격 차이만으로도 쇼핑몰을 바꿔 버린다. 고객 충성도, 단골, 같은 개념은 점점 더 희미한 추억처럼 옅어진다. 


디지털 파괴를 주도하거나, 주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도태되지 않고 파괴의 물결을 타려는 기업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기대치와 욕망, 그러면서도 한 순간에 마음을 바꿔 떠나 버릴 수 있는 변덕스러운 ‘디지털 소비자’들을 상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활용하고 그들의 마음을 얻느냐에 기업의 성패가 좌우되는 시대에 다다른 것이다.




디지털 경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컨설팅 및 연구조사 기관으로 꼽히는 포레스터 리서치의 부사장 겸 수석 분석가인 제임스 매퀴비는, 짧지만 그 울림은 크고 깊은 <디지털 파괴>를 통해 디지털 파괴 시대의 생존법, 더 나아가 성공 비결을 설파한다. 그의 조언은 더없이 실용적이고 입체적이다. 디지털 경제의 최첨병으로 오랫동안 활약해 온 실무 경험이 그 원천이겠지만, 디지털 파괴가 인간의 본성과 욕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파악하기 위해 현대의 인간 심리학 연구 동향까지 언급하는 전방위적 접근법도 한몫 했을 것이다. 


디지털 파괴는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문법은 대부분 유효성을 상실했다. 부서별 구분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지리적 위치와 경계도 마찬가지. 기업의 규모, 업계 간의 구별도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조본(Jawbone) 같은 미니 회사가 ‘모바일 스피커’라는 새로운 시장 범주를 열어젖히는가 하면, 채 열 명도 안되는 기업의 다이어트 앱이 내로라하는 대기업을 제치고 천만 명 이상의 이용자들을 끌어 모은다. 비즈니스 장벽은 완전히 공짜거나 거의 공짜, 혹은 사실상 공짜인 온갖 디지털 수단의 부상과 함께, 낮아진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사라져 버렸다. 기민하고 유연하게 움직이고, 적이든 우군이든 가리지 않고 합종연횡 하고, 소비자의 욕구가 무엇인지, 지금 인기를 얻고 있는 제품의 어느 부분을 개선하면 소비자들이 더 좋아할지 그 ‘인접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기업, 즉 ‘디지털 파괴자’가 미래의 비즈니스를 장악하고 주도할 것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그런 주도자가 되는 데 필요한 파괴자적 사고 방식, 파괴자적 행동 방식을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그려 보이고 있다.


매퀴비는 소비자의 욕구를 이야기하면서 그 동안 많은 이들에 의해 맹목적으로 신봉되어 온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을 비판한다. 인간의 욕구는 그렇게 위계적이고 선형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안위, 다양성, 연결, 유일성 네 가지로 요약되는 인간의 근본 욕구들은 서로 갈등 관계에 있으며, 각각의 욕구가 충족된 지 얼마나 됐는지, 그리고 현재의 욕구 충족 기회가 어떤 상태인지 등에 따라 각 욕구는 서로 우선 순위를 다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욕구를 일종의 기준으로 삼아, 제품이나 서비스가 각 욕구에 제대로 부응하는지 따져보고, 그렇게 되도록 바꾸고,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구를 풀어내기 위한 매퀴비의 심리학 탐구는 이 책에서 남다른 독서의 맛을 주는 대목이자, ‘디지털’ 하면 떠올리는 기술적 경직성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매력적인 파격이다.


<디지털 파괴>는 실용적이고 단순하다. 직설적이다. 어려운 말로 에두르지 않는다. 지은이는 디지털 파괴를 시도한 기업들의 성공, 혹은 실패 사례를 전하는 가운데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방식을 쓴다.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기업들과 일할 기회가 많은 포레스터 리서치의 강점이 잘 발휘된 부분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이다.


“여기에서 소규모 팀이 중요한 것은 기민성 때문이다. 아마존의 최고 기술 책임자(CTO)인 워너 보겔스는 프로젝트 팀이 라지 피자 두 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규모보다 더 커져서는 결코 안된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모든 상황에 다 이상적인 팀 구성 방법은 없지만, 규모가 큰 팀들은 그들 자체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고전하기 일쑤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다 보니 회의 시간을 정하는 일조차 불가능할 때가 많다. 고객의 욕구에 귀 기울이는 대신 내부 직원들의 의견을 청취하느라 도무지 일이 진척되지가 않는다. 이런 문제들을 피하기 위해서는 대규모보다는 소규모로 시작하고 – 디즈니의 팀과 가진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다섯 명이라는 숫자였다 – 필요한 경우 거기에 전문성을 더하라.”


<디지털 파괴>는 디지털이 몰고 온 변화의 물결을 더없이 명쾌하고 정확하게 읽어준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에 대응하는 사고 방식과 행태임을 다양한 실제 사례들로 입증한다. 세상의 변화에 대해 유연해야 하고, 열려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라거나 ‘이러저러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는 대신,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소비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쪽으로 시각을 바꿔야 디지털 파괴의 기회가 열린다고 알려준다. 


지은이는 말한다. “사람들이 신기술을 습득하면 그것을 이용해 기존의 일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시행한다. 하지만 신기술을 내면화하면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일들을 찾아낸다.” 이제 세상은 신기술을 ‘내면화’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디지털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해 수준과 활용 정도도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높아졌다. 명실상부한 ‘디지털 파괴’의 시대인 것이다. 우리는 이 비상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니,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제임스 매퀴비의 <디지털 파괴>는 그런 질문에 대한 주목할 만한 대답이다. 


‘파괴’라고 옮긴 ‘disruption’을 놓고 적잖이 고민했다. 파괴, 변혁, 격변, 붕괴, 분열, 중단, 두절, 혼란, 단절 등 숱한 후보들이 있었는데, 어느 단어도 원어가 가진 맥락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는 느낌이었다. 결국 ‘파괴’로 낙착을 보기는 했지만 아쉬움은 여전하다. 


번역 실력만 부족한 게 아니라 번역하는 속도도 더디기만 했다. 여러모로 부족한 필자를 믿고 번역을 맡겨주시고, 너그럽게 기다려주신 문예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지금 이 세상을 사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복임을 늘 일깨워주는 아내와 두 아이, 동준, 성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2014년 4월15일 밴쿠버에서 김상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