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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설/패밀리데이 올해는 우연히도 한국의 설과 BC의 '가족의 날' (Family Day) 연휴가 겹쳤다. 캐나다의 모든 주들에서는 매년 2월 셋째 주 월요일을 가족의 날로 정해서 토일월 사흘을 쉬는데, 유독 BC만 한 주 빨리 '긴 주말'을 난다. 다른 주들과 같이 셋째 주로 통일하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고 사리에도 맞지 않느냐는 말이 많았는데, 올해만 놓고 보면 한국인과 중국인 처지에서는 고마워해야 할 우연이 된 셈이다. 설은 북미에서도 점점 더 많은 주목을 받아간다. 그 공로의 9할은 중국인들에게 있다. 영어권에서 설의 동의어가 'Chinese New Year'로 사실상 굳어진 것도 그러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내 동료들 중에 퍽 사려깊은 한두 사람은 일삼아 Chinese라는 단어 대신 Lunar라는 말을 써서, '.. 더보기
바람아 멈추어 다오 밴쿠버 아일랜드 주변에는 이처럼 자잘한 섬들이 참 많다. 그 섬들에 자리잡은 아담한 집, 목장, 농장, 작은 개인 선착장, 소규모 골프장처럼 보이는 목초지 따위를 보노라면, 자연스레 '저 섬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침 섬들 사이로 BC 페리가 지나간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혹은 사라져 버리는 듯한 느낌을 문득 가질 때가 있다. 그저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심지어 고개 한 번 잘못 돌려도, 혹은 몇 초 간의 몽상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만으로 삶이 죽음으로 표변할 수 있다는 섬뜩한 깨달음과 만날 때가 있다. 지난해 7월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다 트럭에 부딪혀 인도로 날아가던 순간이 그랬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빅토리아 당일 출장을 마치고 수상비행기로 돌아오던 길에 또 그런 느낌을.. 더보기
요다, 곰돌이 푸, 그리고 버니 샌더스 5분만... 요다도 잠이 필요해!출근하면 매일 어김없이 도착해 있는 메일이 바로 우리 회사와 애보리지널 문제에 관한 뭇 언론의 보도들만 모아 알려주는 ‘미디어 라운드업’이다. 나야 아직도 남아 있는 ‘기자 기질’을 버리지 못해 십중팔구는 기사 제목들이라도 죽 일별해 보는 편이지만 대다수 동료들은 그냥 무시하고 지워버리기 일쑤다. 그 때문인가, 월요일이나 금요일이 되면 맨 앞에 눈길을 끌 만한 우스개나 그림을 올라온다. 홍보부서의 정성이 기특하다. 월요일인 어제 올라온 그림은 그 중 최대 히트작이라 할 만했다. 월요일의 정서나 컨디션과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가 있을까! "오늘 아침엔 뭘 먹지?"“When you wake up in the morning, Pooh,” said Piglet at last, .. 더보기
조용한 주말, 복면가왕, 그리고 하이든 금요일 오후,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 집에 닿기 직전 반드시 올라야 하는 '깔딱 고개', 500 미터 남짓한 마운틴 고속도로 구간을 넘고 나면, '아, 드디어 주말이구나!' 하는 느낌이, 마치 전류가 통하듯 짜릿하게 온몸으로 전해 온다. 금요일의 저녁 식사는 더더욱 달콤하고, 거의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밀려오는 심신의 편안함은 이루 형언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토요일도 더없이 안락하다. 아무런 약속도 없고, 미리 짜놓은 계획도 없다. 다들 마음껏 늦잠을 자도 된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푹 놓고 자면, 누가 깨우지 않아도 제가 알아서 눈을 뜬다. 그것도 평소보다 일찍. 새벽 다섯 시! 평일이라면 '아, 아직도 한 시간 반을 더 잘 수 있구나' 안도하면 다시 눈을 붙이고, 어떻게든 더 깊이 잠들어 보.. 더보기
프린스 조지 2박3일 일정으로 프린스 조지 (Prince George)를 방문했다. 정보 프라이버시, 정보 보안, 정보 관리, 프로젝트 관리 등 네 분야에 대한 이틀 간의 교육이 목적이었다. 내가 몸담은 직장의 서비스 대상이 BC 주 전체를 아우르는데, 프린스 조지는 BC 주 북부 지역의 거점이다. 밴쿠버 아일랜드, 프레이저 살리시, 인티리어 등 다른 지역들에 대한 교육도 올해 중에 예정되어 있다. 프린스 조지는, 구글하면 캐나다의 이 북부 도시보다 영국 왕실의 어린 왕자 '프린스 조지'의 이미지가 먼저, 그리고 더 많이 나타나지만, 적어도 캐나다, 특히 BC에서는 더없이 중요하고 유명한 도시이다. 'BC 주 북부의 수도'라거나 'BC 북부로 가는 관문'이라는 별칭이 그런 비중을 잘 드러낸다. 7만이 넘는 인구도, .. 더보기
What's in a name? What’s in a name? 이름이란 무엇인가. 이름을 잘못 건사하면 무슨 일이 생기는가? 비행기를 못 타는 일이 생긴다. 아니, 놓치는 일이 생긴다. 이곳 캐나다에서, 직장에서 내 이름은 케빈이다. 케빈 킴. 하지만 공식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아니다. 공식 이름은 여전히 김상현이다. Sanghyun Kim. 운전면허증, 의료보험 카드, 여권 등 공식 문서의 이름은 다 상현 킴이다. 회사의 인사 데이터베이스에만 케빈 킴으로 돼 있다. 굳이 공식 개명을 하지 않아도 사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적어도 오늘까지는. 웹 체크인으로 표를 인쇄해 공항에 와서야, 혹시 문제가 되지 않을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회사 공무로 가는 출장의 비행기 표에 적힌 이름 (케빈 킴)이, 지갑에 넣어 휴대하는 운전면허증이나 의.. 더보기
이젠 이별할 때 12월29일/화아직 빅토리아. 이른 아침, 뛸 때 내리던 비는 어느새 그치고, 낮이 되면서 햇빛이 구름 사이로 나왔다. 하지만 아직 따뜻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까지 불었다. 어제 가보기로 한 부차트 가든을 수박 겉핥기로 둘러본다. 그러려니 미리 짐작은 했지만 가지각색 수천 종의 화려한 꽃들로 유명한 '가든'에 꽃 하나 피어 있지를 않으니 꽃을 보는 재미는 애시당초 글렀다. 꽃이 진 자리에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꼼꼼하고 세밀하게도 해놓았으니, 오히려 밤에 와야 꽃을 보는 느낌에 더 가까울 듯싶다. 그래도 볕이 좋고 사람이 거의 없으니 호젓하게 걷는 재미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아래 '성큰 가든' (Sunken Garden)의 본 모습은 이렇다. 부차트 가든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기 위해.. 더보기
빅토리아 1박2일 성우제 선배네와 함께 빅토리아에 간다. 새벽같이 일어나, 집에서 차로 20분쯤 떨어진 호스슈베이 (Horseshoe Bay)의 페리 터미널로 이동. 영하의 날씨에 길이 반들반들 얼었다. 호스슈 베이의 아침 풍경. 아직 날이 밝기 전, 밖으로 새어나오는 카페와 레스토랑의 불빛은, 밖이 춥고 황량할수록 더 따뜻하고 안락해 보인다. 호스슈 베이에서 내다본 바다 너머, 설산준령이 펼쳐져 있다. 하얗게 눈을 인 설산들이 장려하다. 그 설산준령 위로 햇빛이 축복처럼 내린다. 따뜻해 보이는 햇살, 그래서 바닷물은 더욱 차 보이고... 페리에 올랐다. 동준이는 이 사진을 찍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작으로 쓰러졌다. 넉달 만인가? 페리에선 난리가 났다. 응급처치 요원이 달려오고, 간호사가 달려오고, 승객들 중에 끼어 .. 더보기
TGIF - 일상 스케치 금요일은 '팀버 트레인 데이'다. 나한테가 아니라 룸메이트인 데이비드에게. 그는 아이티 보안 관리자로 정보 프라이버시 관리자인 나와 한 방을 쓴다. 창밖으로 그랜빌 광장과 밴쿠버 항구, 그리고 버라드 만(灣)과 그 너머 북해안이 보이는, 전망 좋은 3층 사무실이다. 팀버 트레인은 사무실에서 코르도바 거리를 따라 도보로 7, 8분 걸어가면 나오는 소담한 커피 전문점이다. 거기에서 내려주는 아메리카노 커피와 스콘 (작고 동그란 빵의 일종)이, 데이비드의 말에 따르면 '밴쿠버 최고'다. 다만 스타벅스 사이즈로 치면 톨, 혹은 중간이나 그보다 조금 못 미치는 크기의 커피가 3달러나 하기 때문에 매일 마시긴 다소 부담스러워서 평소에는 사내에 설치된 큐릭 (Keurig) 캡슐형 커피 머신을 이용한다. 그래서 금요일.. 더보기
극과 극 - 3년전 오늘, 에드먼튼 페이스북의 새로운 기능 중 하나로 이용자들의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은 1년전, 혹은 몇년 전 오늘의 기록이다. 페이스북을 이용한 기간이 길수록 과거사는 좀더 다양해진다. 어, 이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 이제사 생각난다... 페이스북이 알려주는 과거의 에피소드는, 현재의 상황과 더욱 표나게 대비되는 내용일수록, 강한 인상과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가령 지난 7일(월)의 경우, 3년전 알버타 주에서 직장을 다니던 시절인데 철 이른 폭설로 통근에 애를 먹은 내용이 나와 있었다. 이 내용을 보고 블로그를 뒤져보니 고생한 내용을 일기처럼 적어놓았다. 그런가 하면 3년전 오늘 - 역시 알버타 주에 살던 시절이다 - 에드먼튼의 기온이 영하 22도를 기록했단다. 11월, 그것도 아직 초순인데 그런 맹추위가 닥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