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주말, 복면가왕, 그리고 하이든
금요일 오후,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 집에 닿기 직전 반드시 올라야 하는 '깔딱 고개', 500 미터 남짓한 마운틴 고속도로 구간을 넘고 나면, '아, 드디어 주말이구나!' 하는 느낌이, 마치 전류가 통하듯 짜릿하게 온몸으로 전해 온다. 금요일의 저녁 식사는 더더욱 달콤하고, 거의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밀려오는 심신의 편안함은 이루 형언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토요일도 더없이 안락하다. 아무런 약속도 없고, 미리 짜놓은 계획도 없다. 다들 마음껏 늦잠을 자도 된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푹 놓고 자면, 누가 깨우지 않아도 제가 알아서 눈을 뜬다. 그것도 평소보다 일찍. 새벽 다섯 시! 평일이라면 '아, 아직도 한 시간 반을 더 잘 수 있구나' 안도하면 다시 눈을 붙이고, 어떻게든 더 깊이 잠들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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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준이의 근황
날씨에 견준다면 동준이는 흐리거나 비, 성준이는 대체로 맑음이다. 아니, 요즘처럼 가뭄이 자심해서 비가 고대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서로 바꿔야 좋을까? 동준이는 엊그제 또 발작을 일으켰다. ‘또’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채 한 달도 안 돼서 다시 발작을 일으킨 탓이다. 이전 발작은 6월28일, 내가 하프마라톤을 뛰던 날, 아내가 몰던 차 안에서 일어났다. 아침 저녁으로 하루 두 번씩 복용하는 약의 강도를 다시 높여 보라는 게 의사의 조언인데, 나나 아내나 불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다. 말귀도 못 알아듣고, 혹은 무시하고, 걸핏하면 쿵쿵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대고, 시도때도 없이 ‘Washing machine~!’을 외치며 세탁기 사용을 엄마에게 강요해서 부아를 돋우는 녀석이지만, 이렇게 발작을 일으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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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아이
동준이가 또 발작을 일으켰다.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 3시쯤이었다. 갑자기 아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후닥닥 동준이 방으로 뛰어간다. 왜, 왜? 동준이? 두 팔을 좀비처럼 앞으로 뻗은 채 꺼억 꺼억... 동준이는 발작하고 있었다. 눈은 초점을 잃었고, 입에서는 피와 침이 흘러, 베갯잇을 적시고 있었다. 온몸이 요동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동준아, 동준아, 가망없이 이름을 부르면서, 팔을 잡고, 어디 숨구멍이 막히지 않을까 확인해 주는 일말고는 달리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속절없이, 무기력하게, 발작이 끝나기를 지켜보는 수밖에, 그 수밖에는 없었다. 다시, 머릿속은 텅 비었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어떤 감정이 솟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판단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다시 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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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준이는 이제 열여섯 살!
지난 일요일(12월7일)은 동준이 생일이었다. 그러나 동준이는 그런 사실을 모른다 (아니 알까?). 오늘이 네 생일이야, 라고 말하니까, 동준인 대뜸 께이끄! 한다. 케이크를 먹자는 얘기다. 동생인 성준이는 제 생일과 크리스마스에만 마음이 가 있지 형 생일은 물론 엄마나 아빠의 생일에 대해서도 무감하다. 이달 말이 엄마 생일인데, 혹시 무슨 선물을 드릴지 생각해 봤니, 라고 물으니, "Oh, I forgot"이라고, 자신의 단골 변명을 내세운다. 캐나다살이의 호젓함을 절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중 하나가 동준이나 성준이 생일 때다. 물론 아내나 나의 생일이라고 해서 그런 쓸쓸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아무렇지 않은듯, 혹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는 게 습관처럼 돼 버렸다. 그리고 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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