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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 달 회고록 (The World’s Strongest Librarian)의 지은이인 조쉬 해나가니는 자신의 꿈 중 하나가 매일 밤 아들에게 로알 달 (Roald Dahl, 1916-1990)의 책을 읽어주는 일이라고 자신의 블로그에 썼다. 해나가니와 그의 회고록은 내가 국내 번역 출간을 권한 인연으로 그 내용을 남들보다 비교적 잘 아는 편이다. 그런 그의 글을 보고, 또 블로그 곳곳에서 로알 달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대체 그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저럴까, 하는 호기심을 가졌다. 내게는 책보다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더 익숙했다. (James and the Giant Peach),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Matilda), (Fanta.. 더보기
사람으로 오해 받은 곰 책을 표지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조언이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게 불가능하다. 표지만 보고, 혹은 속 그림 한두 장만 보고, ‘질러버리는’ 것이다. (The bear that wasn’t)도 그런 경우다.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만나게 될 때까지, 나는 이 책을 몰랐다. 무려 1946년에 나온 동화책인데, 이런 사랑스럽고 익살맞은 책이 있는 줄을 몰랐다! 저자는 벅스 버니, 대피 덕, 와일리 코요테 등으로 유명한 루니 튠즈의 감독을 지낸 프랭크 태쉴린 (1913-1972)이라는 사람이다. 아래는 내가 페이스북의 문예지 소개로 보게 된 그림이다. 거기에 적힌 내용이, 적어도 내게는 더없이 서정적이면서도 따스한 느낌으로 읽혔다. 곰은 자신이 사는 숲의 나무들에 달린 잎들이 노라색이나 갈색으로 변하면서 .. 더보기
중국의 범죄소설 '모살' 올해 처음 뗀 책은 중국 범죄소설이다. 차이쥔의 ‘모살’ (谋杀似水年华)이라는 책이다. 리디북스에서 공짜로 30일간 빌려준다기에 내려받았고, 나름 재미 있어서 후딱 읽어버렸다. 모살은 계획된 살인, 영어로는 ‘premeditated murder’쯤 되겠다. ‘1급 살인’이니 범인은 중형을 언도받을 게 틀림없다. 중국 원제를 구글에 넣어 번역시키니 ‘The murder of Things Past’란다. 과거의 살인, 추억의 살인쯤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한편 네이버 중국어 사전을 써보니 ‘물같이 흐르는 세월 살인’이라고,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도무지 갈피가 서지 않는 말이 되고 만다. ‘모살’은 재미로는 사줄 만했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로는 높은 점수를 주기가 어려웠다. 화자의 시점이 고르지 못하고,.. 더보기
지역 서점을 둘러보는 맛 어디 낯선 도시나 마을에 가서 좋은 서점을 만나면 반갑다. 반가움을 넘어 살짝 흥분되기까지 한다. 거의 모든 비즈니스 업종이 거대 기업들의 손아귀에 들어가 획일화되고 프랜차이즈로 축소 - 아니, 전락 - 하는 요즘의 달갑지 않은 대세를 고려하면 반가움은 더욱 크다. 그런 지역 독립 서점들의 미래가 별로 밝지 않다는 현실 때문에, 반가움 뒤에는 종종, 다음에 와도 살아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바람과 회의가 스며들기도 한다. 모자이크 서점 지난 11일 오카나간 마라톤을 뛰기 위해 컬로나에 갔다가, 실로 오랜만에 좋은 서점을 만났다. ‘모자이크 서점’ (Mosaic Books)이라는 곳으로, 납작납작하고 아담한 벽돌 건물들이 더없이 정겹고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다운타운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서점에 .. 더보기
요즘 읽은/읽는 것들 블로그를 일기처럼 매일은 아니더라도 가능하면 자주 업데이트하고 싶은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 생각은 자꾸 쪼개지고, 독서는 자꾸 짧아지고 얕아지면서 넓게 퍼지다 보니, 어느 하나를 진중하게 '주제'로 붙들고 글을 쓰기도 어렵다. 그런 분절적 행태의 원인을 몇 가지 꼽자면 분주한 일상과 페이스북, 그리고 게으름이다. 지난 며칠 간의 행적을 - '지적' 행적이라고 감히 불러도 될까? - 되짚어 봤다. 요즘 가장 뜨거운 뉴스가 되고 있는 대규모 난민 사태에 대해 유명 철학자이자 저술가인 슬라보예 지젝 (Slavoj Žižek)이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기고한 글을 퍽 흥미롭게 읽었다 (글은 여기). 난민 사태의 역사적 배경뿐 아니라 유럽 선진 국가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짚었다. 한국에서.. 더보기
고독의 열매 띄엄띄엄 책을 읽는다. 이 책 저 책, 어느 한 권에 진득하니 매달려 집중하지 못하고,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지향없이, 무작위로, 그 때 그 때 충동에 따라 펼쳤다가 얼마 못가 잊어버린다. 인터넷의 폐해? 본래 주의 부족으로 늘 핀잔 받아온 내 성정 탓? 아무려나, 읽을 책은 산처럼 쌓여가는데, 제대로 읽어낸 책은 점점 더 줄어든다. 오랫동안 읽어 온 책 중에 '벤 프랭클린의 웹사이트' (Ben Franklin's Website)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벤 프랭클린은 미국 역사에서 지성인을 상징하다시피 하는 그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로버트 엘리스 스미스 (Robert Ellis Smith)라는 이가 쓴, 이를테면 '프라이버시의 렌즈로 바라본 미국의 근대사'라고 할 만한 책인데, 읽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 더보기
벽화가 된 동화 동네 서점이 문을 닫으면서 얻게 된 동화의 그림 석 장을 코스코에 맡겨 패널로 만들었다. 맡긴 지 한 달 가까이 돼서 완성품이 나왔고, 어제 아내가 찾아왔다. 아주 만족스럽게 나왔다. 'Is This a Moose?'라는 책의 그림이다. 글 리처드 T. 토머스, 그림 톰 리크텐헬드. 성준이가 자기 방에 걸겠다고 골랐다. 나도 그게 가장 마음에 든다, 엄마 아빠 방에 걸고 싶다고 했더니 가위바위보 (Rock Paper Scissor)로 결정하잔다. 하여 3판 2선승의 대결이 즉석에서 열렸는데 세 판까지 갈 것도 없이 첫 두 판에서 지고 말았다. 흑흑! 이건 동준이 방에 건 그림. 'The Adventures of Beekle: The Unimaginary Friend'라는 더없이 흥미롭고 독특한 동화의 삽.. 더보기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2014년의 신조어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2014년의 신조어들. 그 언어를 살지 못하고 이민자로 살면서 가끔 느끼는 격절감을 여기에서 새삼 맛본다 (출처: 연합뉴스). 하지만 이 격절감이 꼭 아쉬움만은 아니다. 생경함도 포함된다. 정말 이런 말이 사회에서 널리 통용된다는 말인가, 하는 믿기 어려운 심사도 없지 않다. 이 신조어들에서 한 가지 인지되는 공통점 하나는, 한자가 놓이던 자리에 영어 단어가, 그것도 대개는 영어 단어의 첫 한두 발음 부분이 놓였다는 점이다. 그만큼 영어의 영향이 커졌다는 뜻이겠지. 이를테면 노관심의 노, 디 공포, 먹스타그램, 모루밍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그 기원은 영어이되, 그것이 다른 단어와 조합되는 기준은 한국어 표기의 편의성에 있기 때문에, 실제 영어권 사람들이 그런 말을 알아먹을 가능성은 .. 더보기
내가 좋아하는 신문과 잡지 1. 또 휴가. 수요일. 또 휴가다. 휴가야 많을수록 좋겠지만 그것도 여러 날로 죽 이어지는 게 좋지 요즘처럼 하루 쉬고, 회사 2, 3일 나가고, 또 하루 쉬고 하는 패턴은, 직장에서 업무의 리듬을 회복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래도 3월이 다 가기 전에 써야 할 휴가가 아직 하루 더 남았는데, 마음 같아서는 이번 금요일이나 다음 월요일에 쓰고 싶지만 공교롭게도 빠지기 어려운 회의가 하나씩 들어 있어서 또 어정쩡하게 화요일을 빼기로 했다. 3월31일이다. 수요일은 4월1일, 새로운 2015년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날이다. 그래도 그 주 주말이 다시 금토일월 나흘을 쉬는 '이스터 롱 위크엔드'여서 이른 기대감에 벌써부 긴장감이 풀어지는 느낌이다. 2. 코스코비가 많이 내렸다. 아이.. 더보기
밴쿠버 선 밴쿠버 선은 '더 프라빈스' (The Province)와 더불어 밴쿠버를 대표하는 양대 지역 일간지이다. 이름에 '선'을 단 다른 황색지들과 달리, 밴쿠버 선은 진보적 정론지다. 오히려 더 프라빈스가 타블로이드 판형인데, 밴쿠버 선보다 논조가 가볍고, 소소한 기사들이 더 많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황색지'로 재단하기에는 수준과 품질이 꽤 높은 신문이다. 둘 다 '포스트미디어'라는 언론 재벌 소유이다. 글로브앤메일과 더불어 2대 전국 일간지인 '내셔널 포스트' (National Post)가 이 회사의 간판 신문이다. 내셔널 포스트는 우편향이 심한 보수 신문이다. 지난 목요일 (12일)부터 '밴쿠버 선' (Vancouver Sun)을 다시 구독하기 시작했다. 종이 판이다. '다시'는 그 동안 두 번인가 세 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