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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이성

인터넷의 그늘을 조명한 <불편한 인터넷>이 나왔습니다

불편한 인터넷
표현의 자유인가? 프라이버시 침해인가?
솔 레브모어, 마사 누스바움 편저 | 김상현 옮김 | acornLoft 시리즈
456쪽 | 19,800원 | 2012년 10월 16일 출간예정
YES24, 교보문고,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대교리브로


프라이버시 침해, 명예 훼손, 온라인 괴롭힘, 인신 공격 등 인터넷의 그늘과 부작용을 조명한 <The Offensive Internet>의 한국어판이 <불편한 인터넷>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습니다. 제가 번역했습니다. 제 나름으로는 쉽게 번역한다고 애를 썼습니다만 다시 읽어보니 껄끄러운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도 원문의 뜻을 충실히 반영하려 애썼다고 자부합니다. 아래 글은 역자 서문입니다. 


‘오토어드밋’ (AutoAdmit)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적어도 겉으로 내세운 사이트의 취지는 로스쿨 학생, 지망생들의 정보 공유지였다. 로스쿨에 대한 아고라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 실제 양상은 그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인터넷의 어두운 면과 사악한 면, 익명성의 치명적 부작용을 표나게 드러낸 사이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사태의 발단은 오토어드밋을 통해 뭇 남학생들이 예일대 로스쿨의 두 여학생을 무자비하게 중상 비방하고, 허위 사실을 퍼뜨리고, 심지어 위협까지 일삼은 일이었다. 로스쿨의 우등생이던 두 여학생은 오토어드밋이라는 ‘사이버 시궁창’에서 졸지에 성병 환자가 됐고, 창녀가 됐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욕설과 비방의 표적이 됐다. 


문제는 그 남자들이 하나같이 익명으로 두 여학생을 공격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오토어드밋의 관리자가 문제의 게시물과 댓글을 삭제해 달라는 여학생들의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토론장만 제공할 뿐,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대답이었다. “완전한 표현의 자유가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경쟁 시장’을 형성해 양질의 표현이 저질 표현을 자연스럽게 몰아낼 것”이라는 그럴듯한 명분도 뒤따랐다.


결국 두 여학생은 오토어드밋의 관리자와, 익명의 공격자들을 명예 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사안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유명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자처하며 이들을 돕고, 예일대 로스쿨을 비롯한 법조 관계자들이 오토어드밋에서 벌어진 사태를 비난하며 여학생들을 응원했지만, 이들이 얻은 것은 IP 주소 추적 등을 통해 일부 공격자의 신원을 알아냈다는 정도를 크게 넘지 못했다. 그 대신 이들은 사실 무근의 비방 때문에 유명 법률 회사에 취업하지 못하는 치명적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법률 회사들로서는, 설령 그런 비방이 거짓이고 사실 무근임을 알더라도, 아무런 논란 거리가 없는 후보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오토어드밋 사태는 우리가 인터넷에서 하루빨리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를 제시한다. 정화해야 할 시궁창, 걷어내야 할 그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 책 ‘불편한 인터넷’은 그 같은 인터넷의 음지, 하루빨리 진지한 성찰의 빛을 던져야 할 음습한 인터넷의 늪지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인터넷이 전통적인 신문이나 방송 매체보다 도리어 더 넓고 깊은 파급력과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인터넷이 아직도 서부 개척시대의 무법천지에 더 가깝게 돌아가느냐고, 왜 신문이나 방송에 가해진 여러 타당한 감시와 견제, 법적 제도적 규제가 유독 인터넷만은 비켜 가느냐고, 이 책의 필자들은 묻는다.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인터넷을 통한 명예 훼손의 부작용과 그 대응책, 인터넷 익명성의 빛과 그늘, 인터넷을 통한 평판 관리의 문제, 소셜 미디어 붐이 몰고 온 인터넷 문화의 지각 변동과 그 파장 등, 인터넷 이용자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 고민해 봤을 사안에 대해 이 책은 정공법으로 맞서고, 실천 가능한 해법을 제시한다. 


그러한 정면 돌파가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필자들의 남다른 전문성이다. 이들은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 명예 훼손, 인터넷 평판 등 그들이 몸 담은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학자로 명실공히 인정 받은 실력파들이다. 이렇게 각 분야의 내로라 하는 ‘브레인’들을 한 곳에 모은 것이 신기해 보일 정도다. 


이 책은 보기에 따라 전문서로 분류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학계나 법조계 인사들에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니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 아직도 인터넷을 쓰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 누구나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만 할 사안들이다. 내용도 어렵지 않다. 이들 필자를 ‘실력파’라고 한 것은 비단 전문 분야에 대한 그들의 식견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자칫 어려울 수도 있는 내용을 평이하게 풀어 쓰는 재주에서도 이들은 타의 모범을 보여준다.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의 남다른 유효성이다. 나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미국 사람들보다 한국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미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도리어 더 유효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국민 여배우’ 최진실을 (적어도 부분적으로) 죽음으로 내몬 인터넷의 악성 댓글 문제, 개똥녀나 된장녀 등 숱한 ‘신상 털기’ 행태가 빚는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 익명의 힘을 빌려 무고한 네티즌들을 괴롭히는 사이버 불리(bully)의 문제 등 지금 한국의 인터넷 현실에서, 이 책보다 더 시의 적절한 경종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필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온라인에서 평판이 형성되고 변형되는 속도는 인터넷이 몰고 온 숱한 변화상의 단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그 변화의 대부분이 긍정적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부정적 정보의 표적이 된 사람에게는, 그 정보가 본인 스스로 내놓았으나 돌이킬 수 없게 된 경우든, 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온 것이든, 인터넷은 저주이다.” 


또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집단 따돌림, 학대, 숨겨진 과거 같은 흉측한 이야기들에 이끌린다. 그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이다. 인터넷은 많은 이용자들에게 모욕적일 수 있고, 특히 그로부터 나오는 학대나 공격을 모면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끔찍한 악몽일 수 있다.” 


인터넷을 저주라고 통탄하는 사람이 혹시 당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현실에서 인터넷의 악몽을 꾸는 사람이 바로 당신일 수도, 혹은 당신의 친구나 가족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필자들은 이렇게 진단한다. “한때 기밀이라고 여겼던 일단의 정보는 이제 인터넷 덕택에 전세계를 뒤덮고, 한 사람에 대한 그릇되고 명예 훼손된 정보는 그 사람의 인터넷 신원의 일부처럼 돼버려서, 그의 대인 관계와 취업 기회에 두고두고 악영향을 끼친다. 연인 간의 결별은 인터넷 상의 복수극으로 이어져 성관계의 세세한 내용이 공개되고, 그로 인해 어느 한 쪽의 평판과 정신적 평정이 훼손될 수 있다.” 어디에선가 한 번쯤 본 내용이 아닌가? 


‘불편한 인터넷’은 인터넷의 저주를 걷어내고, 악몽을 선몽으로 바꾸고, 공평하고 공정한 개인 정보가 인터넷에서 유통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작지만 진지한 시도이다. 바라건대 많은 독자들이 이 책으로부터 그러한 희망을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처럼 뜻 깊고 시의 적절한 양서의 번역을 맡겨주신 에이콘출판사의 권성준 사장, 김희정 부사장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번역 상의 여러 실수를 눈밝게 찾아주시고 바로잡아 주신 이웃 블로거 얼음배/일창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졸역이나마, 늘 곁에서 사랑으로 응원해준 아내 김영신과 아들 동준, 성준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이 책을 바친다.


아래 비디오는 이 책의 편집자들인 솔 레브모어, 마사 누스바움 두 교수가 책의 내용에 대해 대담하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