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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의 SF적 알레고리 - '기억 전달자' (The Giver)


제목: The Giver (국내에는 2007  기억 전달자라는 제목으로 비룡소에서 출간)

지은이: Lois Lowry (로이스 라우리)

형식: 전자책 (아마존 킨들 )

파일 크기: 215 KB

종이책 분량: 204

출판사: 허튼 미플린 하코트.

출간일: 1993 426

 

줄거리: “거의 12월이 되었고, 조나스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It was almost December, and Jonas was beginning to be frightened.) 열두 살인 조나스는 12월에 자신의 평생의 직업을 배정 받는다.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히 미래 사회, 조나스가 사는 세상은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갈등도 없고, 가난도, 실업도, 이혼도, 부정의도, 불평등도 없다. 모든 것이 같은 동일성’(sameness) 사회. 가족의 가치가 가장 높이 평가되고, 사춘기의 반항이나 이성 간의 충동적인 불장난 같은 것은 유례조차 찾아볼 수 없다. 상상 밖이다. 깎듯한 예의와 존중이 사회의 가치다. 혹시라도 불쾌한 말을 내뱉은 경우에는 즉시 사과를 해야 하고, 상대는 곧바로 그것을 수용한다. 모든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어 있지만 이는 오웰식 감시라기보다는 선의의 관찰 여겨진다.


어느날 조나스는 친구와 사과를 던지며 주고 받다가 그것이 허공에서 순간 다른 모양, 아니 다른 빛깔로 보이는 같은 착각을 느낀다. 받아든 사과를 자세히 관찰해 보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건 뭐지? 내게 뭔가 문제가 있나?


열두 살을 기점으로 모든 아이들은 그간의 품행과 성향, 관심을 바탕으로 각자의 직업 이라기보다는 소명 받는다. 조나스의 절친인 애셔는 사회에 즐거움을 선사하는 오락부의 조감독으로 임명되고, 피오나는 노인들을 돌보는 관리인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조나스는 매우 특별한 임무를 맡게 된다. 사회에 하나밖에 없는 기억 보유자’ (Receiver of Memories) 역할. 그가 소속된 사회의 길고 오랜 기억을 간직하고, 사회가 곤경에 처하거나 어려운 문제에 부닥쳤을 조언이나 해법을 제공하는 역할이다. 10 전에 새로운 기억 보유자가 선발된 적이 있지만 없는 이유로 방면’(release) 이후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1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제례의 사회. <기억 전달자>의 세계는 어린이들의 나이에 맞춰 엄격히 규정된 프로토콜을 적용한다. 그림 출처: http://picturebookreport.com/category/the-giver/


조나스는 노쇠한 기억 전달자 (Giver) 만난다 (책 표지의 노인을 상상하면 되겠다). 그리고 그로부터 사회의 놀라운 비밀을 하나 전수 받게 된다. 아주 오랜 과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지금 사는 사회의 실체가 무엇인지, 도대체 방면’, 혹은 해제’ (release) 명령을 받은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그가 친구와 사과를 던지고 받는 과정에서 목격한 상황의 진실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독후감: <기억 전달자>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심상은 수많은 과학소설(SF) SF 영화들이다. 조지 오웰의 <1984>,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Handmaid’s Tale),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수전 콜린스의 <헝거 게임> (The Hunger Games), 앨리 콘디의 <짝짓기> (Matched), 영화 가타카’ (Gattaca), ‘플레즌트빌’ (Pleasantville), ‘엠버의 도시’ (City of Ember) 등등. 어디선가 듯한 느낌에만 기대어 목록을 짠다면 족히 한두 페이지는 나올 같다. 우리 상상력은 끝도 없이 다양하고 폭넓은 같지만, 미래에 대한 온갖 상상의 변주를 훑어 보면 놀라울 정도로 반복적이다. 놀라울 정도로 자주 겹친다.


<기억 전달자> 열두 먹은 조나스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겨우 열두 살이지만 조나스의 생각과 시선은 조숙하고 성찰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작가 자신의 시각일 것이라고 여기게 만큼 너무 어른스럽거나 어색하지는 않다. 유토피아로 비쳤던 사회의 실체가 점점 디스토피아의 양상으로 옮겨 가면서, 조나스의 생각과 믿음도 점점 성숙해지고 성장해 간다. 그래서 <기억 전달자> ‘SF’라는 장르의 한계를 넘어, SF 은유를 사용한 성장 소설로 단계 업그레이드 된다. 유토피아인 알았던 세상이 디스토피아였다는 충격적인 깨달음은, 흔히 순진무구 표현되는 어린 시절의 얕고 단순하고 평면적이며 단색인 세상을 벗어나, 깊고 복잡하고 입체적이며 원색인 성인의 세계로 진입하면서 벌어지는 의식의 전이, 혹은 폭발을 은유한 것으로 읽힌다.


소설은 짧다. 하지만 내용은 더없이 풍요롭다. 특히 조나스의 생각과 시선을 묘사한 대목들이 그러하다. 기억 전달자를 만나 세상의 비밀을 배워가는 과정, 그래서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보게 되는 자신의 과거, 자신의 환경, 자신의 가족에 대한 묘사도 매우 강렬하다.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시점의 고뇌, 충격, 방황을 더없이 생생하게 묘사했다는 미덕 때문에, <기억 전달자> 북미의 수많은 학교들에서 필독서 추천 도서 꼽혀 왔다. 지난 20 동안 5백만 이상 팔리는 스테디 셀러로 자리잡은 것도 크게는 그런 덕택일 것이다. 내게 책을 추천한 사람도 다름 아닌 이웃 고등학생이었다.


하지만 독후감은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다소 엇갈린다. 전반부, 아니 3분의 2쯤은 더없이 흥미진진하고 대단히 긍정적이다.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지만 계속 독자의 시선과 관심을 붙잡는 중요한 사건들로 긴장도를 점점 더 높여간다. 이 부분의 소설적 완성도, 독자의 마음을 빼앗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력이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마지막 3분의 1에서 갑자기 그 힘이 떨어진다. 잘 달리던 자동차의 연료가 갑자기 바닥난 듯 퍼덕퍼덕 대면서 서둘러 끝맺으려 갑자기 속도를 높인다. 이야기의 밀도가 떨어진다.


마지막 3분의 1은 제대로 꼼꼼하게 소설이라기보다 마치 다음에 나올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한 듯한 느낌마저 준다. 동안 차근차근 쌓아 올린 이야기의 구조를 순간에 허물어버린 듯한 느낌, 혹은 건물의 90%쯤을 전문 기술자가 양질의 재료로 촘촘히 완성한 다음에 다른 급한 일 때문에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떠나고, 설익은 훈련생이 그 뒤에 나타나 대충대충 모양만 갖춰 날림으로 마무리한 듯한 느낌이다. 시각적으로 비유한다면 비디오의 마무리 장면을 빨리 감기로 휙휙 지나쳐 버린 느낌


더없이 편안했던 세상을 과감히 탈출해 다다른 '다른곳' (Elsewhere)에서, 조나스는 허기와 추위로 탈진해 죽음의 문턱에 이르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조나스가 느끼는, 혹은 바라보는 것에 대한 묘사가 실제인지 아니면 저체온증에 빠져 코마 상태에 빠져드는 순간의 환각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혹자는 그러한 물음표식 결말을 더 높이 치기도 하지만 내게는 더없이 아쉽기만 했다. 그래서 별점은 다섯 만점에 반이다


아래 비디오는 지은이 로이스 라우리가 <기억 전달자>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다. 여담 삼아...라우리는 그 뒤에 <Gathering Blue>(2006년)와 <Messenger>(2009년)를 써서 <기억 전달자> 3부작을 완성했다. 하지만 2부는 그 배경만 비슷할 뿐 내용상 겹치는 인물이 전혀 없는 별도의 작품에 더 가깝고, 3부에는 조나스를 비롯한 1부의 주요 인물이 등장하지만 정작 <기억 전달자>의 열혈 팬들에게는 작지 않은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쪽으로 묘사되었다. 3부에 조나스와 가브리엘의 후일담을 끼워넣지 말고, 끝까지 독자들만의 상상에 맡기는 쪽이 더 나았으리라는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